[남북 개성 당국회담 타결] 6자회담 불씨 살리기 숙제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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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월 만에 재개된 남북 대화는 향후 북핵 정국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일단 북핵 문제 해결이란 최종 목표를 향해 한걸음 전진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우여곡절 끝에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또 하나의 가능성을 열어놨다는 점에서 나름의 성과는 거뒀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무엇보다 북한은 회담 기간 내내 남북 대화와 북핵 문제는 별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6자회담 재개 요구를 호락호락 수용하지는 않을 것임을 거듭 확인한 셈이다. 더욱이 북한은 회담이 성사된 이후에도 거의 매일 미국을 비난하는 논평을 발표하며 대미 긴장도를 높여갔다.

결국 정부는 이번 회담을 통해 '티끌만 한 희망의 불씨를 어떻게 하면 꺼뜨리지 않고 이어나가 6자회담이란 장작불을 지필 것이냐'는 어려운 숙제를 떠안게 됐다.

시간도 많지 않다. 제15차 남북 장관급회담 때까지 남은 한 달이 사실상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라는 데에는 정부 내에도 별 이견이 없다.

지금까지는 "남북 대화가 꽉 막혀 있어 '주도적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설명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면 더 이상 그런 말은 통할 수 없게 된다. 국내외 강경론의 압박에 직면해 있는 정부로서는 배수의 진을 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의 태도도 변수다. 미국은 당분간 사태의 추이를 지켜볼 것이다. 크리스토퍼 힐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를 통해 남북 대화 재개에 대한 환영의 뜻도 공식 표명했다. 특히 미국은 이번 남북 대화에 두 가지 조건을 달아 놓았다고 한다.

어떤 제안을 하거나 합의를 시도할 경우 사전에 미국과도 협의해 달라는 것과 남북 대화의 진전이 북핵 문제 해결에 지장을 줘서는 안 된다는 것 등이다. 한마디로 '미국을 제쳐놓고 너무 앞서가지는 말라'는 메시지다.

서울의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이 6자회담 재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하는 한 남북 대화에 대한 원칙적 지지 입장을 견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남북 대화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그것 봐라. 아무리 해도 안 되잖으냐"며 대북 압박에 동참할 것을 요구해 올 공산이 크다. 남북 대화에 대한 미국의 원칙적 지지가 결과적으로는 대북 제재를 위한 명분 쌓기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럴 경우 미국의 요구를 마냥 외면하기 힘들 것이라는 데에 우리 정부의 고민이 있다. 북한과 미국을 동시에 설득하고 이해시켜야 하는 힘겨운 상황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요 며칠 정부 당국자들이 남북 회담 이전보다 더욱 긴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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