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인플레 망령 되살아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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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경기둔화와 함께 미국과 유럽에서 동시에 물가가 상승하고 있다. 유가와 식품가격 상승이 인플레 악화를 촉진하고 있어 지난 70년대 일어났던 스태그플레이션의 기운까지 감돌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미국, 유럽, 일본의 경기순환이 그 시기와 성격에서 서로 달라 70년대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전세계가 지난 70년대와 같은 인플레 충격에 직면할 것이라고 믿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현재 인플레를 억제해주고 있는 구조적인 요인들이 변화할 경우 인플레가 세계적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신문은 말했다.

신문은 지난해 인플레의 가장 광범위한 척도인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가 선진국들의 경우 1.25%에 불과했으나 인플레가 과소평가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최근 발표한 연례보고서를 통해 지난 10여년간 인플레가 생각보다 잘 억제된 3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첫째는 경제학자들의 모델에 반영되지 않는 인플레 요인의 변화로, 상품시장의 경쟁격화로 인한 기업들의 가격 결정력 상실, 규제완화, 유로화 등 단일통화 도입등이 포함된다고 BIS는 말했다.

둘째는 일시적 요인들로 상품 및 컴퓨터 가격의 하락을 들 수 있으며 현재 미국과 유럽의 인플레는 이같은 일시적 가격충격의 역전현상으로 볼 수 있다는 것.

셋째는 복합요인으로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대로 인한 구조적 실업률 하락, 정보기술의 영향으로 인한 생산성 증가율 개선 등을 꼽았다.

이와 함께 낮은 인플레 환경속에서 노.사가 모두 가격상승을 일시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환율변화도 일시적이고 반전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따라서 수입물가가 소비자물가로 전가될 가능성도 적어진다고 믿고 있는 것도 인플레가 생각보다 잘 억제된 이유라고 신문은 말했다.

그러나 미국의 생산성 향상이 생각했던 것보다 느린 속도로 이뤄질 경우 생산과 인플레간의 균형은 악화될 것이며 이미 그같은 조짐이 보인다고 신문은 말했다.

골드만삭스은 최근 미국의 생산성 증가율 전망을 2.75%에서 2.25%로 하향조정했으며 이는 구조적 실업률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신문은 지적하고 사용자들의 이윤이 더 축소되지 않으려면 실질임금 상승률을 낮아진 생산성 수준으로 끌어내려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실업률 상승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는 실업률 전망을 4.5%에서 5.25%로 상향조정했으며 지난 5월의 실질실업률은 4.4%를 기록한 바 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또 구조적 변화의 인플레 억제효과가 특히 유럽에서 약하게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고 신문은 말했다.

크레디스위스퍼스트보스턴은행의 분석가들은 유로화의 지속적인 약세가 실질환율의 장기적 균형점이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낮다는 것을 뜻할 수도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는 유로화권의 낮은 생산성 증가율이나 잠재생산능력과 같은 구조적 요인들을 반영하는 것으로 유로화권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경직화돼있다면 인플레 압력은 훨씬 더 커질 것이라고 신문은 말했다.

미국과 영국의 경우는 달러화와 파운드화가 강세를 유지함으로써 수입물가를 낮춰 인플레에 대한 안전장치가 돼왔고 수요초과는 경상수지 적자를 대가로 해외공급으로 메워왔다고 신문은 말했다.

따라서 노동시장에 공급이 달리고 실제생산이 잠재생산능력을 웃돌며 소비자들 돈을 마구쓰는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환율이 약세로 돌아설 경우 과거보다 훨씬 더 타격의 강도가 클 것이라고 신문은 내다봤다.

마지막으로 인플레 우려에 대한 열쇠는 통화정책에 있다고 신문은 말했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공격적인 금리인하가 강한 회복세를 불러 일으킬 경우 인플레 쇼크가 올 수 있으며 이는 특히 달러화의 붕괴를 초래할 경우 전세계로 파급될 수 있다고 신문은 경고했다.(런던=연합뉴스) 김창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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