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하루 종일 하는 말이 학교 갈게요, 피곤해요, 밥 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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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열다섯, 문을 여는 시간
노경실 지음, 탐
208쪽, 1만원

‘중2병’이라는 말이 있다. 흔히 말하는 청소년기의 여러 문제가 집중되는 시기가 중학교 2학년 때라는데, 인터넷에는 허세, 소외감, 자기망상 등 중2병 자가진단법까지 나와 있을 정도라고 한다. 책 말미 ‘작가의 말’에 나오는 얘기다.

 10대 아이들의 오늘에 현미경을 들여댔더니 아이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는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특별한 문제아의 반항이 아니다.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는’ 10대 우울증 얘기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현호·지혁·태수도 중학교 2학년생이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한 동네에서 자라며 똘똘 뭉쳐 다녔다. 그런데 태수가 언제부턴가 이상하다. 엄마가 자신을 티라노사우르스처럼 강한 존재로 여기는 게 싫은 태수는 티라노사우르스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듯이 언젠가 자신도 화석이 될 거라고 믿는다.

 태수 엄마는 이런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 “의사가 그러는데 우리 부부가 원인이라는 거에요. 나는 태수를 위해 말 그대로 내 인생을 올인했는데…”라며 가슴을 친다.

 태수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나? 되고 싶은 거? 없어! 하고 싶은 거? 없어! 도대체 뭐 대단한 인생이라고 되고 싶고 하고 싶다는 게 있다는 거야?”

 학교에서는 태수의 우울증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가 떠돌지만, 친구 현호는 자신의 아픔을 솔직하게 드러낸 태수가 그 누구보다 용감하다고 생각한다.

 책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태수의 눈물 어린 독백이다. “엄마랑 아빠는 내가 공부하고 시험 보니까 내가 세상에 있는 줄 알고” “하루 종일 고작 한다는 말이 학교 갈게요, 밥 먹기 싫어요, 밥 줘요, 학원 버스 왔다, 엄마 돈 줘요, 피곤해요, 시험 봤어요, 성적 기대하지 말아요”라는 것이다.

 대단한 갈등과 결말이 있는 스토리는 아니지만 노경실 작가가 섬세하게 그려낸 아이들 내면 풍경은 그 자체로 전하는 메시지가 크다. 시험과 성적 말고도, 아이들에게는 허무맹랑한 꿈을 꿀 권리와 그것을 공유할 단짝 친구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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