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무주택자 역차별” 지적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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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집을 사준 뒤 다시 빌려주는 ‘세일앤리스백(Sale&lease back)’ 제도가 ‘하우스푸어’를 위한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세일앤리스백 논의는 현재 정치권과 금융권에서 ‘투트랙’으로 진행되고 있다. 새누리당은 하우스푸어 태스크포스(TF)에서 추진 중이고, 금융권에서는 우리금융지주가 이르면 이달 중 독자적으로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대상자 선정 기준 마련 등이 쉽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금융이 추진하는 방안은 채무자가 집의 관리ㆍ처분권한을 신탁한 뒤, 신탁회사으로부터 집을 빌려 매달 임대료를 내는 식이다. 소유권은 그대로 원주인이 가진다. 신탁기간(3~5년) 동안 대출이자 수준의 임대료를 납입하면서 기존에 살던 집에서 계속 살 수 있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부동산 관리처분신탁 구조를 활용했다”며 “채무자 입장에선 채무를 탕감받고 소유권을 유지하면서도, 10%대의 높은 연체이자 대신 임대료만 내면되기 때문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신탁기간이 끝나거나 임대료를 6달 이상 내지 않으면 해당 주택은 대출자 동의 없이 매각된다. 집이 팔리면 대출자는 매각대금에서 기존 대출금을 제외한 나머지를 갖게 된다.

우리금융은 우리은행에서만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고객에게 이 제도를 우선 적용키로 했다. 1주택을 가진 실거주자로 대출 상환 의지가 높은 연체자가 대상이다. 지원 규모는 700여 명에 총 90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우리금융은 계열은행인 경남은행과 광주은행으로까지 확대 시행할 예정이다.

새누리당에서 추진하는 방식은 ‘공적 매입 후 임대 전환’이다. 은행권이 공동 투자한 ‘배드뱅크’나 캠코 같은 공적기관에서 하우스푸어의 집을 사들인 뒤 원소유주에게 임대를 준다. 대출을 모두 상환하면 집을 되돌려주는 방식이다.

세일앤리스백을 보는 시선은 우려 반 기대 반이다. 가계부채 문제에 숨통을 틔어줄 대안이라는 평가도 많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집값을 어떻게 산정하느냐의 문제다. 집을 사들일 때 너무 낮은 가격이라면 하우스푸어가 제도를 이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금융 방식처럼 신탁을 활용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당장은 집값 산정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신탁기간이 만료되면 똑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매입 가격이 낮으면 제도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고, 반대로 높으면 특혜가 될 수 있다”며 “적정 매각가는 물론 적정 임대료 수준에 대한 연구조차 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서두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정부 추진안은 재원 마련이 고민거리다. 새누리당은 ‘하우스푸어’를 150만 가구가량으로 추정한다. 가구당 집값을 2억원으로 잡아도 300조원이 든다. 우리 정부 한 해 예산과 맞먹는다. 반대로 우리금융의 방안은 혜택을 보는 대상이 제한돼 있다. 채무자가 타 은행의 대출을 받고 있거나, 집에 2ㆍ3순위 담보가 설정돼 있으면 제도를 적용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화투자증권 심규선 연구원은 “매매가격 결정과 막대한 재원 조달, 매수 범위, 세금문제 등 합의를 도출해야 할 전제조건이 너무 많다”며 “특히 금융회사가 시행하기에는 전제조건이 많아 제한적인 범위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형평성 논란도 있다. 집이 없는 무주택자나 신용대출 등 비(非)주택담보 대출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는 역차별이라는 것이다. 금융연구원 김우진 연구위원은 “전월세 상승으로 부담을 느끼는 서민이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다”며 “제도의 본격적인 시행에 앞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대신 빚을 갚아준다’는 신호로 해석되면서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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