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이번엔 노동정책에 쓴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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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의 정부 개혁에 대한 불만이 규제정책에서 노동정책으로 선회하는 양상이다. 재계는 그간 규제완화 요구를 집요하게 펼친 끝에 정부가 지난달 31일 출자총액제한제의 예외 인정 확대적용 등 상당부분 재계 요구를 수용하는 성과를 얻어냈다.

그러나 때마침 효성 울산공장.여천NCC 등 일부 기업들이 노사분규를 겪는 과정에서 정부가 공권력 행사를 차일피일 미루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자 노동정책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손병두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지난 1일 산하 한국경제연구원 세미나에 참석, "노조의 불법 파업에 대해 공권력을 투입해 달라고 정부 요로에 수차례 요청했으나 묵살당했다" 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최근 노사분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정부 고위 관계자와 청와대 관계자를 잇따라 만났으나 이들에게 명분을 쌓을 때까지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답변만 들었다" 며 "세금을 내는 기업 입장으로서 이해할 수 없다" 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김호진 노동부장관이 최근 노사분규 현장을 돌아다니며 분규대책회의를 주재하면서도 불법 파업 현장을 직접 돌아보지 않았다고 들었다" 며 "일부 지방 공무원과 경찰은 중앙에 현장상황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아 사태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고 비난했다.

재계가 노사문제에 강경자세를 보이는 것은 올해 임단협을 앞두고 정부의 공권력이 무기력증을 벗어나지 못하면 노동계에 계속 밀릴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에서 나온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재계는 이같은 노동정책 문제 이외에도 규제완화 요구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방침이어서 당분간 정.재계의 긴장감이 가시지 않을 전망이다.

재계가 정부의 집단소송제 도입을 막기 위해 기업인을 대상으로 서명운동을 벌이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이 규제완화를 발표하면서 집단소송제는 재계가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면으로 반발하고 있는 것은 재계의 최근 강경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 원장도 "정부의 집단소송제 등 소수주주권제도 강화는 '1주1의결권' 이라는 원칙에도 위배되는 것으로 헌법의 기본권 침해" 라고 반발했다.

김시래 기자sr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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