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의욕만 앞세운 대학가 금주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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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박유미
사회부문 기자

“대학생은 성인이고 캠퍼스는 자유 공간입니다. 과도한 음주는 문제지만, 조선시대도 아닌데 캠퍼스에 금주령이라니요?”

 인천의 한 대학생 강모(24)씨는 정부의 캠퍼스 내 음주 금지 방침 소식을 듣고 6일 황당해했다.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인 건 5일 보건복지부의 음주 규제 정책 때문이다. 복지부는 초·중·고교와 대학교, 청소년 수련시설과 병원에서는 술을 팔거나 마실 수 없게 하겠다고 했다. 한국 성인의 음주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짧은 시간에 술을 많이 먹는 위험 음주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다. 이런 오명에서 벗어나야 하고 규제를 강화하는 것도 백번 옳다.

 하지만 아무리 명분이 좋아도 현실이 받쳐줘야 한다. 이런 면에서 복지부의 음주 규제 중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가는 것들이 뒤섞여 있다. 대학 내 음주 금지가 대표적이다. 대학생들은 캠퍼스 잔디밭이나 동아리방에서 가볍게 맥주를 마시는 경우가 있다. 축제기간에도 그렇다. 일일주점은 대학 축제에서 빠지지 않는 프로그램이다. 복지부의 이번 대책은 캠퍼스 안에서 술에 취해 너부러지고, 여기저기서 ‘실수’하는 젊은이들에 대한 경종인지도 모른다. 우리 대학생들이 술을 많이 마시긴 한다.

 하지만 학내 음주를 어떻게 단속하려는지 의문이다. 구청 직원들이 학교 안을 돌며 술 먹는 학생과 숨바꼭질을 하고 적발한 학생에게 페널티를 부과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정말 캠퍼스 금주가 가능하냐”고 기자가 묻자 복지부 담당 공무원은 “지자체와 학교 측의 협조를 구하려 한다”며 말을 흐렸다. 외국에서도 법을 동원해 대학 내 음주를 금지하는 사례를 찾기 어렵다. 미국·호주·러시아 등은 초·중·고교만 음주를 완전 금지한다. 대학 내에서는 판매 자체를 허가하지 않고, 음주 여부는 교칙으로 자율적으로 규제한다.

 정부는 또 옥외광고와 초·중·고, 대학 주변 200m 범위 안에서의 주류 광고를 전면 금지하겠다고 한다. 입간판을 염두에 둔 것 같은데 식당이나 건물 유리창에 붙은 광고포스터는 어떻게 할지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다. 대학의 기본 정신은 자치주의다. 법으로 강제하기보다 지성으로 해결하도록 유도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해국(가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정책이사는 “대학 내 음주 금지보다 판매 금지가 실효성이 있다”며 “주류(판매)면허제 도입으로 접근성을 떨어뜨리고, 술 취한 사람에 대한 처벌 강화와 치료·상담 연계 문제 등을 같이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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