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 딸" 적나라한 나주 사건 현장 '경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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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석
광주총국장

웬만한 사건·사고 현장에 가면, 노란 띠가 쳐져 있다. 일반인들의 접근을 막고 현장을 보존하기 위해 경찰이 설치하는 폴리스라인(Police Line·경찰통제선)이다. 대부분의 사건 현장에는 경찰관이 배치되어 수사 관계자 이외의 접근을 막는다. 그 덕에 범죄 피해자의 사생활도 어느 정도는 보호할 수 있다. 더구나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폭행 사건이라면 경찰의 통제가 엄중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7세 어린이 납치 성폭행 사건의 현장 전남 나주에선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1일 현장검증 때의 몇 시간을 제외하면, 사건 발생 이후 나흘 동안 경찰관이 배치되기는커녕 그 흔한 폴리스라인조차 없었다. 2일 오후 A양 집 앞에는 취재진은 물론 길 가던 행인들까지 호기심에 유리 문과 창 너머로 안을 기웃거렸다. 아무런 제지가 없었다.

 사건 발생 첫날과 둘째 날은 더했다. 어린이의 부모가 병원에 가 있고, 경황이 없어 문단속을 못한 상황에 경찰마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치한 것이다. 그 결과 집 안의 어지러운 모습 등이 언론을 타고 그대로 전국에 노출됐다. 심지어 A양의 일기장까지 적나라하게 공개됐다. “범인 잡는 것만이 경찰의 임무입니까. 피해자 가족 보호는 안중에도 없느냐고요.” 이웃 주민 박모(47)씨는 언성을 높였다.

 이번 사건의 경우 피해 어린이와 가족의 신원이 최대한 노출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다. 그 상식을 따르느라 본지는 기사에서 사건 발생 장소의 구체적 지명을 드러내지 않고, 현장 약도를 싣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A양이 누군지, 집이 어딘지는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 버렸다. 경찰의 책임도 크지만 일부 언론의 책임도 그에 못지않다. 범인의 이동경로를 보도한답시고 항공사진까지 동원한 상세 지도를 그려 넣고 A양의 집까지 버젓이 표기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성폭행을 당한 아이가 이 집 딸’이라고 알려주는, 정도를 벗어난 친절을 베풀었다. 2008년 12월 경기도 안산시에서 발생한 조두순 사건 때와는 딴판이다.

 “나주 바닥에서 더 이상 못 살게 됐어요. (범인에게) 얘가 당하고, 우리(부모)까지 매장당하고….” A양 아버지의 하소연이다. 그는 “다른 자식도 키워야 하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차라리 모든 것(아이 납치 및 성폭행 사건)을 그냥 덮고 넘어가는 게 더 나았을지 모르겠다”고 지인에게 토로했다.

 나주 성폭행 사건의 피해 어린이는 물론이고 가족들마저 심각한 2차 피해를 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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