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좋은 날 올 줄이야 …합창단과 사랑에 빠졌어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4면

신연숙 희망나래 합창단원이 악보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그저 평범한 주부였던 신연숙(48)씨의 삶에 불행이 닥친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30대 후반에 장애 판정을 받은 신씨는 자신의 장애를 온전히 받아들이기도 전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하늘나라로 떠나 보내야 했다. 숨 돌린 틈도 없이 잇따라 덮친 불행은 곧 가정 해체로 이어졌다.

  “뇌병변 장애 진단에 이어 아들을 먼저 하늘로 보냈어요. 그 와중에 남편은 제 곁을 떠났죠. 장애가 무엇인지 잘 알지도 못했던 터라 죽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어요. 슬프고 괴로웠던 시간도 많았죠. 하지만 지금은 단단해진 것 같아요. 이렇게 좋은 날이 올 줄 모르고 모진 마음까지 먹었던 것을 지금은 후회해요.”

  마비된 왼손과 발을 보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낼 수 밖에 없었던 신씨. 그러나 신씨는 ‘오른손과 발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언젠가는 정상적으로 걸을 수도 있을 거야’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장애는 치료되는 것이 아니라 평생 함께 가는 것이라는 것도 깨닫게 됐다. 헛된 희망에 매달리지 않고 자기계발을 위해 스스로를 내던졌다.

  “희망나래 합창단 단원들이 입는 살구색 드레스는 ‘희망나래 꽃’으로 불려요. 심상희 지휘자가 꽃밭을 만들어 씨를 뿌리고 가꿔 준다고 봐야죠. 향기를 내뿜는 역할은 우리 몫이에요. 지휘자가 끊임없는 인내와 노력으로 지도해 주는 동안 내 자신도 조금씩 변화가 일기 시작했어요.”

  신씨는 “이제 악보도 볼 수 있게 됐다”며 9월 7~8일 개최되는 거제전국합창경연대회 참가곡 ‘그대 있는 곳까지(박영근 작사·M.Hawker 작곡)’를 들려 준다. “영원히 사랑한다던 그 맹세 잠 깨어보니 사라졌네. 지난밤 나를 부르던 그대 목소리 아 모두 꿈이었나봐.”

  노랫말을 한 소절 한 소절 부르던 신씨의 눈에 살짝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이내 씩씩한 모습을 되찾은 그는 “사랑에 빠졌어요”라고 크게 말했다. 그 사랑은 다름 아닌 ‘합창단원들과 이웃 그리고 자신에게 최선으로 표현하는 사랑’이라고 외쳤다.

  “처음에는 서먹하고 쑥스러워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만 했어요. 점차 배우고 싶은 프로그램에 적응하다 보니 지금은 ㈔충남여성장애인연대 단골손님이 된 거 있죠.” 그는 음악 외에도 다양한 방면에 솜씨가 좋다. 여성연대 회원들과 함께 ‘네 바퀴 속의 소통’이라는 시와 산문이 담긴 문집을 냈는가 하면 탁구도 수준급이다. 스피치와 노래교실에도 출석률 1등이다.

  “문집은 속내를 끄집어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 참여했어요. 개인 소장용으로 먼 훗날 저의 삶을 돌아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지금은 살구색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서기 위해 매일 희망나래 합창단에 빠져 살아요. ‘백수가 과로사 한다’라는 말이 저한테 딱 어울리는 말이에요.”

  그는 자신을 음치 중의 음치라고 소개 했다. 하지만 노래 속에 세상과의 무한한 소통과 꿈이 담겨 있어 거침없이 도전했다. “무엇보다도 노래를 하면 행복해요. 합창단 단원이 된다는 것, 얼마 전까진 꿈도 꾸지 못한 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제가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서 있는 거 있죠.”

  그가 머무르는 공간은 늘 왁자한 웃음이 번진다. 밝고 씩씩한 그 때문에 희망나래 합창단은 더욱 활기 있고 사랑이 넘친다. 욕심을 부려 운동하다 고관절 골절 통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신씨의 얼굴은 언제 불행이 있었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편안하고 행복해 보였다.

글·사진=이경민 객원기자

 
 ◆희망나래 합창단=천안교육지원청 특수교육지원센터의 장애성인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충남장애인여성연대와 연계해 운영중인 여성장애인 합창단 프로그램. 주1회 천안교육지원청 특수교육지원센터에서 재능기부를 받아 운영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