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눈 부릅뜨고 대기업 내부거래 감시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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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공정거래위원회가 공개한 대기업의 내부거래가 우려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 46개 대기업 집단의 내부거래 규모가 200조원에 육박하고, ‘일감 몰아주기’ 비판에도 아랑곳없이 전년 대비 내부거래 비중이 더 높아졌다. 더욱 걱정스러운 대목은 그동안 소문으로 떠돌던 잘못된 관행들이 구체적인 숫자로 드러났다는 점이다. 2~3세 경영자 지분율이 높을수록 내부거래 비중이 크고, 이런 거래일수록 수의계약이 압도적이었으며, 대금 결제 방식도 현금을 자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대기업들은 “100% 출자나 수직계열화 등 내부거래가 부득이한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해명한다. 또한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배경에는 내부거래가 큰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다. 독일과 일본 제조업들의 경쟁력도 수직계열화에 따른 효율성 덕분이다. 하지만 내부거래도 지나치면 독(毒)이 된다. 특히 광고·정보시스템(SI)·물류 등은 수직계열화에 따른 순(順)기능이 별로 없는 업종이다. 그런데도 이런 계열사일수록 수의계약을 통한 내부거래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렇게 되면 외부의 독립기업들이 끼어들지 못하고, 경쟁이 사라지면 사회 전체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역기능으로 이어진다.

 이런 관행에 제동이 걸리지 않으면 ‘일감 몰아주기’와 ‘경영권 편법 승계’가 기승을 부리게 된다. 온 사회가 ‘반(反)대기업 정서’에 물들고, 일반 기업들은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망감에 빠지게 된다. 벌써 그런 부작용이 ‘경제민주화’의 역풍으로 몰아치고 있지 않은가. 대기업 스스로 내부거래를 자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 공정한 시장의 룰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우리 사회 전체가 감시의 눈을 부릅떠야 한다. 이대로 내부거래가 팽창을 거듭한다면 공정위가 외과적 수술에 나설 수밖에 없다. 이런 불행한 사태를 예방하려면 대기업들 스스로 과감히 계열사들을 정리하는 결단을 내릴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