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고은, 스승 미당 강력 비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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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고은씨가 지난해 말 타계한 미당 서정주 시인의 삶과 시를 정면으로 공박하고 나섰다. 고씨는 미당의 추천으로 1958년 문단에 나온 이후 미당을 '시의 정부(政府) ' 라고 추켜세우며 육친적인 정을 나눈 사이.

그러나 80년 미당이 신군부를 찬양하고 나서자 고씨는 미당과 단호히 결별, 미당에 대해 가타부타 않고 입을 다물어왔었다.

고씨는 이번 주말 나올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기고한 '미당 담론' 에서 "실존적 자아의식이나 근대적 역사 사고와는 동떨어져 있다" 며 미당을 비판했다.

고씨는 "그가 생전 내내 자처한 '떠돌이' 로 떠났으나 그와 반대로 그는 세상의 주인이고자 한 집착도 없지 않았고, 세상에는 그에 대한 평가와 맹신이 있는가 하면 다른 쪽의 규탄으로도 얼룩져 있어야 했다" 며 미당의 삶을 시에 대입해 본격적으로 '규탄' 하고 나선 것.

고씨는 "미당을 말할 때마다 마치 원죄로서의 영예인 듯, 주부(呪符) 인 듯 반드시 내세워지는 미당론 생활필수품 같은 텍스트" 라며 미당 초기시 '자화상' 을 분석했다.

'애비는 종이었다' 는 첫 행에서 고씨는 미당의 부친이 대지주의 마름이었음을 상기시켰다. 지주의 논밭을 경작하는 소작인들을 관리하는 마름을 고씨는 "상전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지만 하인에게는 무서운 존재" 라며 미당의 태생적인 '노예근성' 을 먼저 환기시켰다.

'스물세햇 동안 나를 키운건 8할이 바람이다' 는 부분에 대해 고씨는 "기껏 20대 초의 방황쯤으로 삶의 8할을 바람으로 돌리는 것은 언어 자체가 가지는 허상" 이라고 비판했다. 또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라는 구절에서 고씨는 "세상에 대한 수치가 결여된 체질" 로 미당을 봤다.

고씨는 일제 식민지하에서 친일문예지 '국민문학' 의 편집책이 되고 조선인 지원병 송가를 쓴 미당의 친일문제도 거론하며 "미당에게는 역사의식으로서의 자아가 가능하지 않았다" 고 비판했다.

이런 미당의 몰역사의식.의지박약.노예근성이 "상대가 일제든 해방 이후의 집권세력이든 권력의 편에 존재함으로써 시인의 특장인 음풍농월의 가락 속에 일신의 안보를 유지 했다" 고 비판했다.

고씨는 "근현대사의 고행 가운데서 아직도 역사의 진실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삶과 문화의 정체성이 있어야한다" 며 그 역사의 진실을 위해 스승인 미당시를 공박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미당의 삶과 시를 역사적.사회적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반박도 만만치 않아 고씨의 이번 글은 많은 논란을 부를 것 같다.

소설가 이문구씨는 "미당에게 시인 이상의 무엇을 요구하는 것은 예컨대 오답을 유도하거나 위답을 기대하는 뒤틀린 심사와 무엇이 다르겠느냐" 며 역사적으로만 미당을 재단하려는 태도를 경계했었다.

문학평론가 이남호씨도 "과연 미당이 그렇게 비난받아야 할 만큼 반민족적인 행위를 많이 한 사람일까. 이에 대해서는 냉정하고 정확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 고 밝힌바 있다.

정부에서도 "과거 친일.친독재 경력에 대한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우리 언어를 풍부하게 만들고 한민족의 정서를 심어준 미당의 시세계를 높이 평가한다" 며 미당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문학평론가 유종호씨는 "미당에 대한 긍정적.부정적 평가는 늘 있어왔다. 그러나 미당이 우리 시에 끼친 영향은 결코 부정될수 없다" 며 고씨의 글을 찬찬히 읽어본 후 반론을 펴겠다고 밝혔다.

문학평론가 김재홍씨도 "삶과 사회를 시에 덮어씌워 평가하는 것은 문학에 대한 또다른 왜곡" 이라며 고씨에 대한 반론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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