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타나베 부인의 귀환 … 엔화 4년째 ‘서머랠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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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만 오면 달아오르는 엔화,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2009년 이후 4년째 반복되는 현상이다.

 19일(현지시간) 뉴욕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전날과 같은 달러당 79.56엔으로 마감했다. 최근 열흘 사이 주춤하긴 했지만 올여름 내내 지속돼 온 달러당 70엔대 후반의 강세가 지속됐다. 6월 중순 80.45엔까지 떨어졌던 엔화가치는 7월 들어 지속적으로 올라 8월 1일 달러당 78.12엔까지 치솟았다. 일각에선 “3년 내 엔화가 가장 강했던 75.78엔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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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마다 엔이 강세를 보이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9년 4월까지만 해도 달러당 평균 98.97엔 수준을 유지했던 엔화가치는 7월 들어 달러당 94엔대로 상승했다. 2010년엔 달러당 평균 90.91엔(6월 평균)을 유지했던 엔화가치가 여름이 되면서 87.64엔(7월 평균), 85.5엔(8월 평균)으로 치솟았다. 지난해 역시 6월 평균 80.63엔이던 달러당 엔화가치가 7월 79.47엔, 8월 77.14엔으로 올랐다.

 이런 현상은 최근 2, 3년 사이 유독 여름만 되면 미국·유럽발 악재가 불거진 데서 비롯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본다. 2010년 여름엔 미국 경제 전망에 대한 불안이 고조됐고, 지난해 8월엔 미국의 신용등급이 강등됐다. 2009년 여름엔 일본 재무상의 “엔화 강세를 용인하겠다”는 발언이 엔화 강세를 부추겼다는 분석이다.

 올해 역시 미국 경기회복 지연과 유럽 재정위기 등이 엔화의 ‘서머랠리’를 부추기고 있다. 미 달러화와 유럽 유로화가 힘을 쓰지 못하면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일본 시장으로 자금이 몰린다는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해외 투자에 대한 위험이 증가하자 일본 투자가들이 국내로 자산을 들여오고 있다”라며 “글로벌 금융위기가 지속되는 한 이런 본국 송환 흐름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에서 추가 양적 완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엔화의 몸값을 높인다. 달러와 유로화의 공급이 늘면 상대적으로 엔화가 강세를 보인다.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선진국의 금리가 초저금리였던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으로까지 내려갔다”며 “굳이 해외에 투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금리가 싼 일본에서 돈을 빌려 선진국의 높은 금리에 투자했던 캐리트레이드도 거의 청산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저성장과 국가 부채 등 일본 경제의 전반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엔화가 안전자산의 위상을 유지하는 것은 민간이 축적한 자금력 때문이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역설적으로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복구 수요 등으로 내수시장에 조금씩 숨통이 트이고 있다”며 “국제 금융시장은 ‘어렵지만 일본 경제가 유럽처럼 갑자기 꺼지진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있다”고 말했다.

 향후 엔화의 움직임은 ▶유럽 재정위기의 향방 ▶미국의 추가 양적완화 여부 ▶일본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여부 등에 달려 있다. 8월 중순 들어 미국의 경제 지표 개선 소식이 전해지면서 엔화가 잠시 약세를 보인 것도 “양적완화 가능성이 낮아진 것 아니냐”는 시장의 추측 때문이다. 이항준 외환은행 딜러는 “미국 경제가 호전된다 해도 유럽 경제가 단시간에 좋아질 수 없기 때문에 엔화는 상당 기간 강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자국 수출 기업의 타격이 큰 만큼 일본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임미진·위문희 기자

와타나베 부인 해외의 고금리 자산에 투자하는 일본의 주부 외환투자자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와타나베(Watanabe)는 한국에서 김씨·이씨처럼 흔한 성(姓)으로, 국제금융가에서 일본 외환투자자들을 부르는 용어다. 일본에서 낮은 금리로 엔화를 빌려 외화로 환전한 뒤 해외의 고금리 자산에 투자하는 일본의 중·상층 주부 투자자들을 와타나베부인이라고 하는데 일본의 개인 외환투자자들을 통칭하는 용어로 확장해 사용하기도 한다. 이들은 일본의 10년 장기불황(1991~2002년)과 은행의 저금리를 배경으로 2000년 무렵부터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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