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기업인은 오른손과 왼손을 모두 쓰는 사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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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호 26면

시슬리의 공동창업자인 이자벨과 위베르 부부의 2남3녀 중 장남인 필리프 도르나노(48·사진) 사장은 프랑스 가족기업협회 부회장도 맡고 있다. 프랑스 기업인으로는 보기 드문 지한파다.

프랑스 가족기업협회 부회장인 필리프 도르나노 시슬리 사장

-부의 양극화 현상과 부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세계적으로 번지면서 기업인의 정치적 입지가 좁아지는 것 같다.
“프랑스 하원에는 공무원·교사 출신이 많은 반면 기업인은 한 명도 없다. 다소(Dassault) 항공 출신이 한 명 있지만 명예회장직을 맡고 있어 기업인의 의견을 대변한다고 하기 힘들다. 프랑스 기업들은 국가 정책에 대한 의사표현을 자주 한다. 기업의 사활이 걸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 내에서는 최고경영자(CEO)가 정치적 견해를 밝히지 않는다. 정치적 견해가 다른 임직원이 많기 때문이다. 대를 잇는 가족기업을 정부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억제하거나 방해하는 건 유감이다. 유럽연합(EU)의 조사 결과 가족기업의 대물림이 제대로 안 되고 결국 사라짐으로써 매년 20만 명의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한다. ‘가족기업의 시대는 갔다’고 주장하던 전문가가 한때 많았다. 경기가 좋을 땐 가족기업의 영업실적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불황기나 경제위기 땐 실적이 더 좋다.

어떤 경제학자는 가족경영을 ‘오른손(신중)과 왼손(혁신)을 모두 쓰는 사람’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신중함이란 가족자본을 토대로 일관성과 지속성을 꾀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혁신이란 건 전문경영인보다 빠른 의사결정을 하고 위험에 더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슬리는 1993년 해태상사를 통해 한국에 진출했다. 그런데 한국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5년 뒤 해태상사가 부도를 내고 말았다. 당시 해태상사 책임자가 시슬리 판매직원들을 모아 놓고 ‘오늘부터 월급을 줄 수 없다’고 통보했다. 그래서 아버지(위베르 도르나노)가 몸소 한국으로 가 ‘봉급은 내가 직접 줄 테니 걱정 말고 열심히 일하라’고 동요를 진정시켰다. 이후 시슬리는 지사 체제로 바뀌었다. 이제 시슬리에 한국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유망한 곳 중 하나다. 가족기업이라서 당시 한국 사업의 위기에 신속 대처할 수 있었다.”

-한국을 자주 방문한다.
“한국은 손꼽는 화장품 대량 소비국이다. 당연히 관심이 많고 자주 찾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최고의 품질을 무기로 하기 때문에 광고나 스타 마케팅을 잘하지 않는다. 세계적 스타 중에는 영국인 가수 엘턴 존이 우리 제품을 많이 쓴다. 샤넬 디자이너인 카를라거 펠트도 우리 제품을 많이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의 여배우 중에는 전도연과 각별하다. 친구처럼 지낸다.”

-돈 많은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으로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훌륭한 경영자 소리를 듣게 된 비결은.
“어려서부터 근로의 값어치를 배웠다. 아버지는 자연을 벗 삼아 농장을 손수 일궜다. 그곳에서 육체 노동을 해야 용돈을 받아 쓸 수 있었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학업 성적표가 잘 나와야 어머니가 용돈을 줬다. (어머니 이자벨은 이 대목에서 일화를 소개했다. 당시 필리프의 담임교사가 학부모 모임에서 “어떤 학부모는 자식의 학업 성적에 따라 용돈을 준다고 하더라”라고 꼬집어 얼굴을 들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또 가족과 모이면 정치·경제·사회·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부모는 참을성 있게 자식들의 의견과 주장에 귀 기울였다. 열린 마음을 키워주셨다. 또 나에게 세계를 보는 글로벌 마인드를 많이 키워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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