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야구] 감독의 믿음이 선수를 만든다

중앙일보

입력

16일 NHK를 통해 본 시애틀과 애너하임의 경기는 경기 내용도 흥미진진했지만 그 이상으로 느낄게 많은 경기였다. 특히 이날 경기에서의 압권은 시애틀 루 피넬라 감독의 선수 기용이었다.

전날 시애틀은 마무리 사사키가 9회말 1점차에서 등판, 애너하임 5번 앤더슨에게 끝내기 투런홈런을 맞는 바람에 경기를 날려버렸다.

그런데 오늘 경기도 어제처럼 2:1로 시애틀이 아슬아슬하게 리드한 상황에서 9회말을 맞았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9회말 애너하임의 타순역시 어제와 똑같이 4번 글로스부터 타순이 시작되었다.

이 상황에서 평상시와 같았으면 바로 사사키가 올라 왔겠지만 어제 끝내기 홈런을 쳐낸 앤더슨이 5번에 버티고 있었기에 피넬라 감독은 이미 8회 등판해 있던 넬슨을 계속 던지게 했다.

이후 넬슨은 4번 글로스를 삼진으로 잡고 마운드를 좌완 로즈에게 물려주었다. 그리고 로즈 역시 좌타자 앤더슨을 범타로 처리하며 9회말 2아웃까지 잡아내는데 성공했다.

이렇게 마무리 하기에 편한 상황이 되어서야 피넬라 감독은 사사키에게 마무리를 맡겼다. 그리고 마운드에 올라온 사사키는 첫 타자를 볼넷으로 출루시키긴 했지만 다음 타자를 범타 처리하며 6세이브째를 따내는데 성공했다.

오늘 경기에서 사사키가 따낸 세이브는 단순한 1세이브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피넬라 감독은 어제 실패했던 사사키가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하기위해 9회 2사 주자없는 상황에서 그에게 마무리를 맡기는 배려를 했다.

그리고 사사키는 무난하게 마무리에 성공하며 감독의 이런 의도에 보답했고, 스스로도 어제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날수 있었다. 그렇기에 경기를 마친후 사사키의 얼굴은 밝았고, 그런 사사키를 포옹해주는 피넬라 감독의 모습에선 선수를 믿어주고 배려해주는 후덕한 지도자의 풍모가 느껴졌다.

필자는 이 경기가 끝난 후, 이종범과 호시노 감독이 떠올랐다. 현재 이종범과 호시노 감독은 전혀 '서로가 서로를 믿지않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이런 둘 사이의 갈등의 결정적인 원인은 올시즌들어 이종범이 호시노 감독에게 노골적으로 외면당한데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미 그전부터 이종범을 대하는 호시노 감독의 태도는 쌀쌀했다고 한다. "수시로 게임에 넣었다 뺐다 하니까 컨디션 조절도 쉽지 않았고 게다가 나를 완전히 믿어주지 않아 이래저래 힘들었다."는 이종범의 고백 역시 이를 뒷받침 해준다. 한마디로 호시노 감독은 이종범을 배려해주지도 신뢰해주지도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선수 역시 감독을 위해,팀을 위해 열심히 뛰고싶은 마음이 생기기란 무망하다.

물론 이것이 호시노 감독의 스타일일수도 있다. 열혈남아라고 불리는 호시노 감독은 선수를 생각하기보단 팀과 승리를 우선시하는 스타일이기에 이종범에 대해 많은 제약을 했다고 볼수도 있다.

하지만 선동열에게는 96년 부진에도 불구하고 줄곧 신뢰를 보였고, 99년 우승의 마무리 투수를 맡길정도로 배려해주었던 호시노 감독이 왜 그렇게 이종범은 백안시하며 믿음을 주지않는지 납득하기 어렵다.(특히 올해는 더욱 그렇다.)

요즘 오릭스에서 맹활약중인 구대성을 볼 때, 이종범의 처지는 더욱 초라해 보인다. 오릭스 오기 감독은 구대성이 시범경기 막판 약간 불안감을 주었음에도 믿고 마무리를 맡겨주었고, 며칠전엔 구대성이 마운드가 불편하다고 말하자마자 고베 그린스타디움 마운드의 흙까지 갈아주는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오기 감독의 애정과 믿음은 구대성의 맹활약으로 이어졌고, 오릭스의 초반 상승세를 몰고 왔다. 결국 사사키나 구대성의 경우를 볼 때, 감독이 선수의 능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선 선수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는 걸 알수 있다. 감독이 그 선수를 신뢰하고, 애정을 쏟을수록 선수역시 그만큼 감독을 위해,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할 의욕이 생기는 것이다.

오늘 이종범은 올시즌 두번째로 1군에 복귀한다고 한다. 일단 1군에 올라오긴 했지만 지금처럼 이종범이 호시노의 눈밖에 난 상황에선 큰 기대를 하기 힘든게 사실이다.

앞으로 이종범의 미래가 어찌되든 호시노 감독이 이종범의 실패는 곧 자신의 실패라는 사실 하나만은 알았으면 한다. 왜냐하면 98년 이종범을 스카우트한 건 바로 호시노 감독 자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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