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왜 정부를 믿지 않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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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적인 책 제목은 우선 '국민은 정부를 믿고 있지 않다' 는 분명한 전제를 깔고 있다. 그리곤 되묻는다. '왜? .


정부의 리더십 붕괴는 동서가 다르지 않다. 이 책은 주로 미국의 현실을 다루고 있지만 그 얘기를 이 땅에 빗대보는 데 하등 무리가 없다. 아직까지도 '대통령=정부' 의 공식이 통용되는 이 나라에서 한때 70%를 웃돌았던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올해 초엔 28%(본지 여론조사) 까지 추락한 것만 봐도 이 책의 전제는 충분히 충족되니까.


정치든회학 연구서 〈국민은 왜 정부를 믿지 않는가(원제 'Why People Don' t Trust Government' ) 〉의 집필자들은 조셉 나이 등 하버드대학 케네디 정책대학원의 교수 12인이다. 정부와 정치인에 대한 불신 현상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에서도 심각하다.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의 설문조사 결과 1964년만 해도 미국 국민 4명 중 3명이 연방정부가 하는 일에 대체로 옳다는 믿음을 표명했으나 이 책이 나오기 2년 전인 96년에는 4명 중 1명꼴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한국과 다른 것은 정부와 학계의 태도다. 카터와 클린턴 행정부에서 각각 국무차관보.국방차관보를 역임했던 나이 교수 등 미 정부의 핵심브레인격인 하버드대의 석학들은 먼저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현실을 솔직히 인정한다.

이들은 이런 현상이 어느 정도까지는 건강한 민주주의의 척도가 될 수 있으나 국민이 납세나 준법의무까지 외면하게 될 만큼 심화할 경우 민주주의의 대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절감한다. 이에 따라 그 원인을 사회과학적으로 면밀히 분석, 해결책을 찾으려 한 노력의 산물이 바로 '국민은 왜 정부를 믿지 않는가' 이다.

이 책은 우선 국민이 정부에 기대하는 업무 영역은 어디까지이며 이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실제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등을 짚고 있다.

이어 신뢰도 저하에 대한 다양한 가설들을 검토한다. 정부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도전하게 만든 현대인들의 개인주의적 성향이라든가, 워터게이트 사건과 같은 일부 정치인들의 비도덕적 행태, 그리고 정부나 정치인들에 대한 부정적 보도에 집착하는 언론의 선정주의적 경쟁 등이 국민의 불신도를 높였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경제적 성과와의 연관성은 미국의 경우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인플레이션 곡선과 정부에 대한 신뢰도 곡선이 시기적으로 일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불신의 정도가 빈부격차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들은 이러한 논리들이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 유럽 및 일본의 경우를 비교해 놓았다.

이 책은 미국 사례 위주이며, 현지에선 98년에 발간된 까닭에 최근 정치딛황은 고려되지 않았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민심에 관해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분석을 꾀하고 있기 때문에 요즘 정치현실 분석의 준거 틀로 삼기에 큰 문제가 없다. 무엇보다 어설픈 결론이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대신 정부와 국민의 올바른 역할에 대해 진지한 사색의 계기를 마련해준다는 점이 이 책의 큰 덕목이다.

■ 한국 상황은 어떤가


이 책의 감수를 맡은 임길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원장은 추천사를 통해 몇 가지 한국적 특수 상황을 지적했다.

먼저 우리나라 경제정책은 1997년 외환위기가 보여주었듯이 크나큰 실패였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그같은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후의 구조조정이나 경제개혁도 일관성 없이 갈팡질팡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둘째, 김대중 정권은 건국 이래 처음으로 여야간의 정권교체를 이루었지만 권위주의.중앙집권주의.막후 교섭주의와 대안없는 입장표명 같은 고질적 병폐를 여전히 극복하지 못했고, 이러한 독소들이 국민의 믿음을 파괴하고 있다.

셋째, 유교적인 전통 가치관을 갑자기 버리고 새로운 서구적 가치관을 비판없이 받아들인 과정에서 개인이나 조직관계는 지속성을 잃고 혼란에 빠져 있다.

임원장은 이렇게 결론짓는다. "국민이 정부는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한다면 근본적으로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정직한 정부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 국민이 우리의 정부가 부패해 있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부패의 척결에 앞장서야 한다. "

과연 우리(정부와 국민 모두) 가 해낼 수 있다고 믿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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