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시탐탐 기회 엿보는 유통 공룡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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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합병 가상 시나리오

이번 TV홈쇼핑 사업자 선정에서 가장 큰 이변은 롯데의 탈락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롯데가 가장 당선권에 근접해 있다고 보았다.

유통업에 대한 전문성이나 그룹차원의 의지로 볼 때 롯데의 TV홈쇼핑 시장 진출은 상당히 유력했다. 막판까지 현대백화점과 치열한 경쟁을 했지만 결국 패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롯데의 홈쇼핑 시장 진출 가능성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실제로 롯데의 이선대 과장도 “계속해서 시장을 워치(watch)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전히 홈쇼핑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 백화점 매출만 5조7천억원을 기록한 ‘공룡’ 롯데가 굳이 홈쇼핑 시장에 진출하려는 의도는 유통의 수직계열화 때문이다. 백화점, 할인점, 편의점, 인터넷 쇼핑몰, 패스트푸드점까지 가지고 있는 롯데로서는 홈쇼핑 채널만 가지면 유통업에 완벽한 라인업을 구축할 수 있다. 또 이미 물류와 배송 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시장에서 바잉파워도 막강해 TV홈쇼핑 사업을 할 경우 추가 비용도 별로 들지 않는다. 때문에 이번에 사업진출은 실패했지만 2∼3년간 추이를 보면서 적당한 기업을 인수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롯데의 의지가 분명한 만큼 ‘사냥감’이 어느 곳일까도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일단 롯데는 모든 기업을 염두에 두는 듯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불과 얼마 전까지도 롯데와 기존 홈쇼핑 업체와 접촉이 있었다고 얘기했다. 현대의 경우 백화점 사업이 주력이기 때문에 홈쇼핑 사업을 쉽게 포기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또 인지도가 떨어지고 업종이 다른 우리홈쇼핑이나 농수산방송도 별로 매력적이지 못하다.

만약 현대가 2∼3년 내에 홈쇼핑 시장에서 약진을 할 경우 지각변동을 불러올 가능성이 가장 크다. 백화점 업계의 빅 3인 현대의 성장은 롯데나 신세계에게 적지 않은 위협이다.

현재 상황으로서는 현대가 약진한다면 CJ와 치열한 다툼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되면 굳이 유통업이 주력이 아닌 CJ는 적당한 가격에 사업을 넘겨줄 수도 있다. 인수 후보자는 물론 롯데와 신세계다. 당초 TV홈쇼핑에 큰 의지를 보이지 않았던 신세계도 현대에 이어 롯데가 참여한다면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빅 3 중 2곳이 참여한다면 자신도 빠질 수 없기 때문이다.

롯데의 참여의지가 확고한 만큼 신세계의 참여의지도 확고할 수밖에 없다. CJ가 형제기업인 신세계에게 넘겨주든, 높은 값으로 롯데에 넘겨주든 일단 한 곳이 인수하면 남은 기업은 필사적으로 LG를 포함 다른 업체를 인수하려 할 것이다. 이렇게 유통 빅 3가 시장에 진입하면 LG가 남아 있더라도 시장상황에 큰 변동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의 공격적 마케팅과 업계의 자존심 싸움으로 LG의 입지도 상당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어쩌면 TV홈쇼핑 시장에서 유통 빅 3를 모두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급성장하는 시장이니만큼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게 홈쇼핑 시장의 현재 상황이다.

이석호

> 기자(luk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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