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샘]MBC '홍국영' 어설픈 장르파괴

중앙일보

입력

'장르적 관습을 파괴한 명감독'이란 표현이 있듯 익숙한 것을 바꾸고 비틀면 새로운 재미를 준다. 그 변용과 파괴가 대중의 인정을 받아 유행을 창출하면 그 분야의 선구자가 되는 것이다.

지난달 26일 첫 회를 내보낸 MBC 사극 '홍국영'도 TV사극의 장르적 관습을 과감히 비틀어 보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하오'라는 어투를 '했니' '그랬니' 등 현대적 어투로 바꾸고 인물 간의 관계 설명에 할애하는 시간을 대폭 줄였다. 배경음악으로 과감히 전자기타음을 썼다.

그러나 지금까지 방송된 내용이나 형식을 보면 장르 파괴가 피상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특히 폭력과 노출장면이 지나치게 많아 장르파괴보다는 시청률을 올리겠다는 시도로 비친다.

극중 주막의 여인과 정후겸(정웅인)패거리들이 나눈 대사 중에는 "영계가 좋아" "우리가 다 보는 데서 뽀뽀나 한 번 해봐라"는 식의 저급한 내용이 많고 정사장면이 너무 빈번하다.

MBC 홈페이지의 시청자 게시판에는 "낯뜨거워 못보겠다"는 항의성 글이 다수 올라 있다. 게다가 술병으로 머리를 내려치는 장면이 여과없이 방송되는 등 폭력도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또 김상경·정웅인·정소영 등 주연급의 표정 연기가 받쳐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현대어를 쓰다보니 시트콤이나 코미디 프로를 보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좀 과격하게 말하면 '홍국영'은 TV사극의 에로물화 혹은 시트콤화로 장르를 비틀었다. 경쟁사인 KBS의 한 드라마PD는 "드라마의 장르 파괴는 해당 장르에 대한 명확한 해석과 이해가 전제돼야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아직 갈 길이 먼 '홍국영' 제작진이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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