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있던 0원짜리 퍼터로 '15억 퍼팅'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3면

최나연에게 행운을 선물한 퍼터. [사진 세마스포츠]

“솔직히 지금 쓰고 있는 퍼터는 0원짜리예요. 이 공짜 퍼터가 수억원의 대박 행운을 갖다 줬죠.”

 제67회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최나연(25·SK텔레콤)의 얘기다. 그는 13일 본지와 통화에서 “15년 동안 창고에 있던 퍼터가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우승에 결정적인 도움을 줬어요”라고 우승 뒷얘기를 털어놓았다.

 최나연은 지난 9일(한국시간) 끝난 US여자오픈 3라운드에서 7언더파 63타를 몰아쳐 역전 우승의 디딤돌을 놓았다. 미국골프협회(USGA) 마이크 데이비스 전무는 최나연의 스코어를 보고 “전장 7000야드에 가깝게 세팅(6954야드)된 코스에서 7언더파는 말도 안 되는 타수”라고 고개를 저었다. 최나연은 이날 보기 1개에 버디를 8개나 잡아냈다. 퍼트수는 26개였다.

최나연이 US여자오픈 3라운드 12번 홀에서 15년 전 모델인 퍼터로 퍼팅을 하고 있다. 최나연은 10~12번홀 3연속 버디를 했고, 8개 버디를 잡아내 역전 우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콜러(위스콘신주) AP=연합뉴스]

 그런데 최나연이 쓴 ‘보비 그레이스(Bobby Grace) 말렛’ 퍼터는 지금은 생산이 중단된 15년 전 모델이었다. 최나연은 이 퍼터로 우승상금(6억6000만원)과 7개 스폰서 업체로부터 받게 되는 보너스 등을 합쳐 약 15억1800만원의 대박을 터트렸다.

 참 묘한 인연이었다. 최나연은 지난겨울부터 기존에 쓰던 퍼터에 믿음을 잃어 가고 있었다. 스윙 코치인 케빈 스멜츠(42)가 구닥다리 퍼터를 하나 가져와 쓸 것을 권유했다. 처음 느낌은 마치 ‘무기’ 같았다.

 “이 퍼터는 모델명도 몰라요. 스멜츠가 PGA 투어에서 뛰는 행크 퀴니(37)를 예전에 가르쳤는데 퀴니가 ‘난 이제 필요 없으니 코치에게 선물한다’며 주고 갔다고 하더군요. 스멜츠는 그걸 창고에 15년 동안 보관하다가 저에게 건네준 거예요. 안니카 소렌스탐이 이것과 똑같은 퍼터를 사용해 US여자오픈을 우승했다는 얘기를 듣고 디자인이 못생겼지만 욕심이 났어요.”

 최나연이 사용하는 퍼터는 전 세계에 100개밖에 없는 한정판이다. 최나연은 이 퍼터를 올 1월부터 사용했는데 3월에 퍼터를 디자인한 보비 그레이스(43)를 만나 한 자루를 더 얻었다고 한다. 최나연은 “시리얼 넘버 100개 중에 제가 7, 8번을 가지고 있어요. US여자오픈 우승은 8번으로 했어요”라고 웃었다. 보비 그레이스사는 현재 최나연의 이니셜을 딴 ‘NYC 투어’란 퍼터를 생산 판매하고 있다. 가격은 275달러(약 32만원)다.

 최나연은 어떤 퍼팅 연습을 많이 하느냐고 묻자 “고전적인 방법인데 요즘에도 동전치기(100원짜리 동전 두 개를 포개 놓고 윗 동전만 쳐내는 훈련)를 한다”며 “임팩트가 좋아지고 공 구름의 직진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최창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