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민 조롱한 정두언 체포동의안 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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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어제 국회가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킨 것은 매우 실망스럽다. 새누리당은 한 달 전 국회의원에 대한 불체포 특권(헌법 44조)을 포기하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했다. 정치적 탄압을 막기 위한 보호장치였지만 그동안 정치권은 비리 의원의 방탄용으로 악용해왔다. 역대 46건의 체포동의안 중 9건만 가결됐다. 이런 잘못된 관행을 털어내겠다고 스스로 한 약속을 팽개쳐버린 것이다. 이러니 그동안 떠들어온 다른 국회 개혁 약속인들 제대로 실천할 수 있을 것인가.

 불체포 특권 포기는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다. 정치권이 스스로, 특히 새누리당은 의원들이 모여 결의문까지 발표한 것이다. 그런데 이제와 법 논리를 따지려 한다면 변명에 불과하다. 정두언 의원도 이틀 전 “헌법이 명시한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사흘 전 “새누리당은 이미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고, 그에 따라 처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다. 새누리당 원내 지도부가 사퇴한다고 끝날 일도 아니다.

 부패에 둔감하고 자기희생에 소극적인 이미지를 씻어보겠다며 당 이름까지 바꾼 새누리당이다. 총선에서 승리하고 유력 대선 후보인 박근혜 의원의 지지율이 유지되니 웰빙당 버릇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국민 눈높이에 맞추겠다며 경제 민주화나 일자리 창출을 내세우고, 내 꿈이 이뤄지는 나라라고 아무리 외친들 현실에서 드러난 새누리당의 오만한 모습을 덮을 순 없을 것이다. 새누리당이 주도한 정두언 부결 사태는 국회 원내사건이 아니라 나라 꼴을 우습게 만든 국민 조롱 사건이다. 대선 가도에서 유권자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사건이 아닐 수 없다.

 19대 국회 자체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배신감도 치유하기 어렵다. 정 의원을 위해 반대토론을 한 김용태 의원은 형사소송법상 영장실질심사는 강제구인된 상태에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라도 강제구인이 가능한 일반시민에게나 적용되는 절차다. 국회 동의 없이는 강제구인 할 수 없는 국회의원에게 그런 절차를 요구할 수는 없다. 국회가 체포안에 동의해 주면 법원의 판단에 영향을 준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이미 법원은 체포가 필요하다는 의지를 담아 동의안을 국회에 보냈다. 더군다나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킨 것 역시 법원의 판단에 영향을 준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닌가.

 19대 국회는 무소속인 박주선 의원 체포동의안은 통과시키고 정 의원 체포동의안만 부결시킴으로써 정당이기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정 의원 체포안에 민주당 의원들도 상당수 반대표를 던졌다. 박주선·정두언 의원 체포안 처리 이후에는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다음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쪽에서 박 원내대표 체포동의안이 제출될 경우 ‘새누리당이 봐달라’고 품앗이를 요청하는 신호일 수 있다. 말로는 특권 포기와 국회 개혁을 외치지만 언제 내 차례, 내가 속한 정파가 수사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이기심이 발동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