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초청 받은 날 … 군부와 맞선 무르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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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르시

도박이냐 계산된 쇼냐. 이집트 무함마드 무르시 신임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의회를 재소집하고 입법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대통령령을 발령했다. 지난달 14일 헌법재판소의 의회 해산 결정을 뒤집은 것이다. 헌재 결정 자체가 군부의 입김 아래 이뤄진 것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군부에 대한 일격이다. 10일 소집되는 의회의 절반가량은 무르시와 같은 자유정의당(무슬림형제단) 소속이다.

 ‘상왕’ 군부하에서 무르시가 식물대통령으로 있지만은 않을 것이란 관측은 있었지만 이날 발표는 전격적이었다. 군최고위원회(SCAF)는 무르시의 의회 재소집 명령 이후 긴급회의를 열고 대응에 나섰다. SCAF 관계자는 이집트 언론에 “의회 재소집 명령과 관련해 사전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정치분석가 무함마드 칼릴리는 “무르시의 결정은 군부로부터 입법권을 되찾아 국회에 돌려주려는 것”으로 “새 의회 구성 전까지 정부에 권한을 부여하기 위해 어떤 법안이 필요했던 것 같다”고 AFP통신에서 밝혔다. 의회 해산 뒤 SCAF는 새 의회 구성 때까지 입법권과 예산감독권을 자신들의 권한 아래 두는 임시헌법을 발동했다. 이번 결정은 이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무르시 대선캠프에서 미디어 조정관을 지낸 사메 엘에사위는 이번 결정이 군부에 대한 견제라고 했다. 그는 영국 가디언지에 “이집트 군부는 터키에서 군이 하는 역할을 하려고 한다”면서 “그것은 혁명이 아니다. 지금 맞서지 않으면 소용없다”고 말했다. 터키는 이슬람의 정치 개입을 금지하기 위해 강력한 군부를 내세운 세속주의 정치모델을 만들어 왔다.

 그러나 무르시 대통령이 군부와의 정면충돌은 피할 거라는 예상도 있다. 브루킹스 도하 연구소 샤디 하미드 소장은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무르시는 군부와 장군멍군을 하려고 한다”면서 “무르시가 세게 나가면 군부가 반격할 것이고 그러면 물밑 협상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히려 이번 결정이 사전 교감에 따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의회 재소집을 하되 새 헌법 발효 후 60일 이내에 조기 총선을 치르겠다고 한 것은 이번 의회가 임기(4년)를 다 채우게 하지는 않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BBC는 무르시의 이날 발표는 SCAF가 약속해 온 것과 동일하다며 이번 조치가 군부와의 ‘복잡한 거래’ 중 일부일 수 있다고 전했다.

 무르시 대통령의 이번 발표가 윌리엄 번스 미국 국무부 부장관의 예방을 받은 지 몇 시간 만에 나온 것도 관심을 끌었다. 번스 부장관은 무르시와의 회동 결과를 발표하면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의회의 활동과 권리를 지지하는 새 헌법을 입안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오는 9월 유엔 총회 때 무르시 대통령을 미국에 초청했다고도 밝혔다.

한편 무르시의 발언 다음 날 헌재는 반박 성명을 내고 “헌재의 모든 결정은 최종적이며 뒤집을 수 없다”며 “헌재 결정의 법적 구속력은 모든 국가 기관에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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