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피치] 박찬호 '설거지의 깨달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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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를 하다가 깨달음을 얻었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LA 다저스)가 얼마 전 진실한 깨달음을 얻었다며 그 사연을 전해왔다. 참선을 하다가도 아니고 책을 읽다가도 아닌, 그릇을 닦다가 얻은 깨달음이라기에 귀가 솔깃했다. 사연은 이렇다.

박선수의 어머니가 집을 비운 날.

그는 동생과 밥을 먹은 뒤 내기에서 져 설거지를 하게 됐다고 한다. 약간 지루하게 느끼며 접시를 하나씩 깨끗하게 닦던 중 문득 머리를 스치는 한 가지 생각에 집중했다.

"왜 접시를 말끔하게 닦아야 하는가" 였다. 어떻게 보면 우둔하다고 볼 수 있는 생각이었다. 그냥 음식을 담아서 먹으면 될 텐테 왜 반짝반짝 빛이 나도록 접시를 닦아야 하느냐에 의문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는 자연스럽게 '접시를 청결하게 닦는 것은 깔끔하고 맛있는 음식을 담기 위해서' 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접시가 지저분하면 모양이 좋고 맛있고 훌륭한 요리도 볼품이 없어지고 만다는 평범한 사실이었다.

여기서 그는 한발 더 나아가 접시를 사람의 마음과 연결시켜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다. 접시나 사람의 마음이나 모두 '뭔가를 넣을 수 있다' 는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는 "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그는 이 깨달음을 설명하면서 목청을 한껏 높였다.

"사람의 마음도 접시와 마찬가지로 늘 건전하게 비어 있어야 건강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담을 수 있다는 거지요. 마음이 지저분하고 더러우면 나쁜 길을 가려는 생각, 남을 해치려는 생각이 마음 속에 자리를 잡아 올바른 생각이 들어설 틈이 없지 않겠어요? 그래서 저도 늘 마음을 말갛게 유지하려는 수련을 해요. 또 '내 마음이 지저분하지는 않은가' 하고 의문을 가져보는 습관도 생겼어요. "

그와 대화를 나누고 나서 한참 동안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이 닦은 접시처럼 깨끗해야 건전한 생각을 담아둘 수 있다는 그의 깨달음은 평범하면서도 의미있는 것이었다.

그는 지금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다. 지난해 성적이 미국 진출 이후 가장 뛰어난 18승10패였다. 덕분에 연봉도 9백90만달러까지 치솟았다. 올해 그를 가리켜 20승이 손에 잡힐 것처럼 기대하는 미국.한국 팬들이 많다. 또 사이영상 후보나 올스타전 출전을 기정 사실처럼 여기는 전문가들도 있다. 그렇게 되면 연봉은 또 한번 천문학적으로 치솟을 것이고 우리는 그 '숫자' 에 얼마나 감탄할 것인가.

그러나 정작 본인은 '접시에 어떤 요리를 담을 것인가' 가 아니라 '과연 접시를 내가, 그리고 팬들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인정하는 그릇으로 담금질하고 있는가' 에 더 집중하고 있다.

그는 입버릇처럼 "1승, 10승, 20승이 아닌 제대로 된 스트라이크 하나를 던지는 것이 목표" 라고 말한다. 마음을 가장 진지하게 담아낸 그 표현대로 투구가 이뤄지길 지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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