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가 꿈꾸는 투자자는 망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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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호 24면

일러스트=강일구

다음은 소형주 투자로 유명한 미국의 전설적 펀드매니저 랠프 웬저의 일화다. 그의 저서 작지만 강한 기업에 투자하라에서 발췌했다.
그는 새해를 시작하면서 임직원들과 연말 뉴욕증시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얼마가 될지 예상해 봤다. 연초 지수가 2190이었는데, 그는 2316을 썼다. 직원들 모두 예측치를 적어냈는데 우연의 일치였는지 그의 아내이자 파트너인 리 젤에게 물어보니 역시 똑같은 2316을 예상했다.

증시 고수에게 듣는다

“당신, 어떻게 그런 주가를 예상했어요?” 웬저가 물었다.
“내 생일이 23일이잖아요. 그리고 우리 딸아이 생일이 16일이고….” 젤의 대답.
“말도 안 돼, 그런 엉뚱한 예측이 어디 있어….” 웃으며 핀잔을 줬다.
“당신도 2316을 적었다면서요. 예측 전문가인 당신 수치와 동일하니 잘 찍은 거지 뭐….”
“사실 내가 다니는 헬스클럽 회원번호예요.”

연말 다우지수는 2342로 끝났다. 맞히지는 못했지만 두 사람 예측치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다.
웬저의 뚱딴지 같은 일화는 주가지수 예상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일 수 있는지 잘 말해준다. 수백 가지 자료와 가정을 동원해 산출한 주가지수 예측치가 생일이나 헬스클럽 회원번호 같은 우연의 수치와 다를 바 없다니 얼마나 허망한가. 미국에선 다트 게임과 전문가가 수익률 경쟁을 해봤는데 전자가 이긴 사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한번쯤 예언자가 되고 싶어 한다. 특히 주식 투자자들은 성공적인 예언자가 되길 열망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단 1초라도 남보다 먼저 미래 주가를 안다면 엄청난 부자가 되는 열쇠를 쥔 셈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못 맞히는 걸 난 할 수 있다는 일종의 영웅심리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투자자들은 안 될 줄 알면서도 예언자 꿈을 쉽사리 버리지 못한다.

지난 주말도 전 세계적으로 예언자가 급증했다. 단 하나의 이벤트, 그것도 일요일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그리스 제2차 총선을 두고 주식시장은 경마장과 같은 열기를 내뿜었다. 한 전문가는 “급진좌파연합인 시리자가 승리해 그리스가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당장 주식시장 급락에 베팅하라고 조언했다. 선거가 다가오면서 그의 주장은 더 강해졌다. “그리스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에서 이탈해 원래 자국 화폐를 쓰면서 환율조정 능력을 갖추는 것이 그리스를 위해서도 좋다”는 논리였다. 마침내 선거가 끝나고 월요일 주식시장이 열렸다. 선거 결과는 모두 알다시피 재정긴축을 지지하는 신민주당의 승리였다. 이 소식에 우리나라 코스피는 1.8%나 뛰었다. 그러자 그 전문가는 “그리스 국민이 바보 같은 선택을 했다”고 투덜거렸다. 처음에는 순수한 예상이었을지 모르지만 이쯤 되면 자기합리화와 아집으로 변질됐다.

주식시장에서 미래를 예상하는 일, 예언자가 되는 일은 이처럼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필자는 언제나 자신이 잘 아는 분야에서, 기업 본연의 가치를 보고 투자할 것을 조언한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진부하다고 치부하는 사람도 많다. “교과서만 보고 공부했는데 수능시험 전국 수석이 됐다”는 수험생 말처럼 들려서인가. 그럼에도 ‘가치 투자’는 나의 신조다.

가치 투자를 삐딱하게 바라보는 이들은 우선 “너무 지루하다”고 불평한다. 대선을 앞둔 각종 테마주를 보면 가치 투자로 1년 벌어들일 수익을 반나절 만에 벌어들이지 않는가. 신문지상에 몇천 퍼센트의 고수익을 올린 투자자 이야기가 나오면 가치 투자는 고리타분한 서당 선생님 말씀쯤으로 들린다. 혹자는 이렇게 수익 올리기 쉬운데 왜 그 고생을 하느냐고 한다. 그러나 화려한 고수익 전략은 처참한 수익률 급락과 동전의 양면이다. 투자한 주식이 며칠만 하한가를 치면 이를 복구하는 시일이 왜 이리 길어 보이는지 경험해본 사람은 잘 안다. 올해와 내년 각각 5%씩 수익을 올린 A펀드와 올해 -50%, 내년 +100%의 수익률을 기록한 B펀드가 있다고 하자. 셈이 빠른 독자는 내가 원하는 정답을 찍을 수 있을 것이다. A펀드는 지루해 보여도 복리 10.25%의 짭짤한 수익이고, B펀드는 화려한 부활에도 불구하고 고작 원금을 회복했을 뿐이다.

가치 투자에 대한 또 다른 불만은 “너무 꼼꼼한 부분까지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가치 투자자들은 미래 걱정이 너무 많아 투자하려는 기업에 대해 A에서 Z까지 모두 알아내려 한다. 그런데 주식의 ‘모멘텀(주가 변수)’을 중시하는 투자자들에겐 부질없게 보이기도 한다. 특히 이것저것 두루 살폈는데도 미처 보지 못한 한두 가지 리스크의 출현으로 주가가 떨어지면 가치 투자는 허울만 좋다고 여겨지기 쉽다. 이것이야말로 가치 투자에 대한 큰 오해다. 가치 투자는 만능이자 요술상자가 아니다. 돈 벌 확률을 높일 뿐이지 완승을 거둘 비책은 아니다. 골프를 보자. 단판승부라면 수준 높은 주말 골퍼가 박세리와 내기해서 돈을 딸 수도 있다. 아마추어지만 컨디션이 좋고 박세리가 좀 부진하다면 천하의 박세리라도 한두 번 질 수 있다. 그러나 100번 맞붙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주식시장에서는 이런 승부가 무수히 반복된다. 몇 번은 모멘텀으로 돈을 벌 수 있어도 100번 반복되면 돈을 잃을 가능성이 더 커진다. 반대로 가치 투자는 한 번은 지더라도 승부가 반복될수록 승률이 높아지는 투자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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