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이미 1968년 당시 핵무기 제조가 가능하다는 기술적 결론을 내렸다.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총리 때다. 내각조사실 의뢰로 비밀리에 작성된 보고서(‘일본의 핵정책에 관한 기초적 연구(1)’)는 “원자탄을 소량 제조하는 것은 가능하고, 또 비교적 쉬울 것”이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미사일 추진·유도에 대해서도 상세히 적고 있으며 “핵폭탄 제조는 핵 재처리시설이 완공되는 72년 이후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사토 내각은 그러나 70년 핵 보유의 전략적 측면을 다룬 보고서(‘일본의 핵정책에 관한 연구(2)’)에서 “일본은 전략·외교·정치적 구속으로 핵무기를 가질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좁은 국토에서의 지하 핵실험 어려움 ▶산업 집중에 따른 핵공격 취약성 ▶핵무장에 따른 외교적 고립이 그 이유였다. 64년 중국의 1차 핵실험에 대한 일본 정부 차원의 결론이었다. 44년이 흐른 지금 일본이 핵무장의 결단만 내린다면 핵무기 제조는 시간문제로 보인다. 핵 및 인공위성 기술 발전 때문이다. 일본이 국내외에 보유한 플루토늄 33t을 모두 핵무기로 만들 경우 5000개 이상이 된다(핵무기 1기당 플루토늄 6㎏ 기준).
그러나 일본의 핵무장을 막는 견제장치는 한둘이 아니다. 그 첫째는 핵무기의 보유·제조·반입을 금지한 비핵(非核) 3원칙이다. 사토 총리가 67년 중의원에서 표명한 이래 지금까지 정부의 기본정책이 되고 있다. 둘째는 미·일 원자력협정이다. 이 협정은 핵 물질의 군사적 전용 금지와 위반 시의 핵물질 (미국) 반환을 담고 있다. 미·일 동맹을 깰 각오를 하지 않고선 핵개발에 나서기 어렵다. 셋째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이다. 이 조약이 보장하는 평화적 핵이용 권리의 최대 수혜국 중 하나인 일본이 핵물질을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하면 국제 비확산 체제는 깨진다. 여기에 일본 국내 여론도 무시할 수 없다. 일본은 세계 유일의 피폭국이다. 원전 알레르기마저 강한 나라에서 핵무기 제조로 가기는 극히 어렵다. 국내외의 장벽이 그만큼 높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