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핵무장 의혹 자초한 일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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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일본이 원자력 관련법에 ‘안전보장’이란 표현을 삽입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일본 의회는 20일 원자력규제위원회 설치법을 통과시키면서 법의 목적을 규정한 1조에 ‘우리나라의 안전보장에 이바지한다’는 문구를 삽입했다. 아울러 1955년에 제정된 원자력기본법 2조를 고쳐 원자력 연구와 이용, 개발의 기본방침에 ‘국가의 안전보장’을 추가했다. 일본이 핵무장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과 함께 동북아의 핵 도미노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후지무라 오사무 관방장관은 “일본 정부로서는 원자력을 군사적으로 전용할 생각은 일절 갖고 있지 않다”며 원자력기본법 개정이 핵무장으로 가는 길을 연 게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핵무기를 제조하지도, 보유하지도, 도입하지도 않는다는 ‘비핵(非核) 3원칙’을 견지한다는 일 정부 입장에는 추호의 흔들림도 없다는 것이다. 안전보장이란 표현은 핵물질의 잘못된 전용이나 테러 등을 막기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만든 ‘안전보장조치(safe guards)’를 가리키는 것이지 핵무장 가능성을 뜻하는 건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일본이 그동안 써온 외래어 표기대로 ‘세이프 가드’라고 하면 될 것을 왜 영어로 ‘security’를 뜻하는 안전보장이란 표현을 써서 오해를 자초하는지 의문이다.

 더구나 일본 정치권은 ‘원자력의 헌법’인 원자력기본법을 고치면서도 여론 수렴이나 충분한 논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안전보장이란 표현은 보수 성향인 자민당의 요구로 막판에 슬그머니 추가됐다고 한다. 사전에 국회 홈페이지에 올리지도 않았다. 그러니 일본 정부와 정치권이 장래의 핵무장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밀실야합식 꼼수를 쓴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이다.

 일본의 극우 세력은 북한핵을 이유로 핵무장을 주장해 왔다. 북핵 문제 해결이 요원해지면서 그런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마음만 먹으면 일본은 수 개월 안에 핵무장을 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미 쌓아놓은 플루토늄만 30t에 달한다. 많게는 핵무기 1만 개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일본의 우주로켓 기술은 언제든지 핵 운반 미사일 기술로 전용될 수 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이 동의하지 않는 한 일본의 핵무장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일본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고, 이를 발판으로 핵확산금지조약(NPT)의 핵보유국 지위를 확보한다면 가능할지 모르지만 미국은 몰라도 중국이 동의할지 의문이다.

 만일 북한처럼 NPT 체제 밖에서 핵무장을 한다면 일본은 국제사회의 이단아가 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 일본이 핵무장을 하면 한국도 안 할 수 없다. 동북아 전체가 핵전쟁의 공포에 빠진다. 가뜩이나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런 마당에 핵무장 의혹까지 보태져서 일본에 좋을 게 없다. 일본은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원자력 관련법의 표현을 바로잡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