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참하게 폭격당한 카다피 궁전, 8개월 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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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눈 가는 자리마다 온통 폐허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70%에 달했다는 바브 알아지지야(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원수의 복합관저, 우리말로 찬란한 문이라는 뜻). 미사일 공격에 대비한 두꺼운 방호벽도, 천장을 수놓았던 순금 샹들리에도 간데없었다. 지난해 4월 30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의 미사일이 이곳을 폭격했다. 얼마간 남아 있던 건물들도 카다피가 도주한 뒤 시민들이 불도저로 밀어버렸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지만, 42년 철권통치의 뒷자리는 허망했다. 무너진 건물 벽에는 ‘리비아 해방(Free Libya)’과 ‘카다피 물러나라’ 등이 아랍어와 영어로 어지럽게 휘갈겨져 있었다.

 무너진 것은 바브 알아지지야만이 아니다. 내전이 종식된 지 8개월이 됐지만 리비아는 아직 혼돈에 휩싸여 있다. 무력충돌도 계속되고 있다. 쿠푸라에선 투부 부족이 반기를 들어 최근 20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인도적 구호를 펼치고 있는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본부는 최근 미스라타와 벵가지에서 잇따른 공격을 받았다. 트리폴리 해방군으로 진격했던 각 지역 민병대가 귀향하지 않고 일부는 갱단으로 변해버린 것도 치안 불안을 더한다.

 그러나 아무도 혁명을 후회하진 않는다. 미스라타에서 만난 메라리반 트래시(42)는 “혁명으로 모든 게 바뀌었다”고 했다. 카다피 집권 직후 태어난 그는 7월 7일 제헌의회 선거에서 처음으로 투표란 걸 하게 된다. “사람들은 더 다정해졌고, 서로를 믿는다. 하루아침에 다 좋아지진 않을 거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자유다.”

 나토군 포격으로 무너진 카다피의 집무실을 시민들이 둘러보고 있다. 왼쪽 작은 사진은 포격 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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