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도둑맞은 이집트 민주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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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집트의 민주화가 도전받고 있다. 새 민주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과도정부를 맡은 군부가 혼란기를 틈타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부는 17일 차기 대통령의 군 통수권을 사실상 박탈하고 새 헌법을 만들 제헌의회 의원을 자신들이 임명하는 내용의 임시 헌법을 발표했다. 지난주에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무슬림형제단이 장악한 의회를 해산했다. 민주주의의 첫걸음을 떼고 있는 국민을 배신하고 군부가 권력을 사실상 하이재킹(공중납치)한 것이다.

 군부는 16~17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에서 이슬람주의자 무함마드 무르시 후보가 자신들이 내세운 아흐메드 샤피크 후보를 누를 것으로 예상되자 차기 대통령을 ‘식물 대통령’으로 만들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선거로 당선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만들어 놓고 자신들이 사실상 이집트를 통치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처럼 선거 결과가 자신들에게 불리해지자 법을 유리한 방향으로 미리 뜯어고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모욕이고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수많은 국민이 피를 흘려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을 몰아내고 쟁취한 ‘이집트의 봄’을 끝내고 과거로 돌리는 행동이다. 민주주의는 합리적인 선거와 그 결과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한다.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정파가 집권해도 국민의 뜻이라면 이에 따라야 마땅하다.

 이집트는 공화국 건국 초부터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는 세속주의를 추구해 왔다. 세속주의는 이집트가 외국에서 많은 관광객과 투자를 유치하는 요인이었다. 이 세속주의를 지켜온 세력이 군부다. 하지만 이제 시대의 변화에 따라 군부도 진화해야 한다. 선거 결과를 존중하면서 국민과 함께 호흡하는 집단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집트 군부를 오랫동안 지원해 온 미국과 서방 국가들은 이들에게 더 이상 민주주의에 도전하지 않도록 신호를 보내야 한다. 국제사회도 이집트에 민주주의가 정착할 수 있도록 도울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당선이 유력한 무르시 후보도 이슬람주의자 집권에 대한 국내외 우려를 불식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오랫동안 중동 평화를 담보해 온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을 준수하겠다는 선언을 하는 게 가장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야만 국제사회가 그를 지원할 명분을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