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 문명의 발전 과정 비교 해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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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과 서양의 역사를 한꺼번에 읽으면 어떨까요? 우리가 왜 역사를 읽으려 하는가 하는 질문부터 먼저 들이댄다면 답을 얻기가 훨씬 쉬워질 것 같습니다. 거칠게 대답하자면 지금의 우리를 더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과거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지난 날의 역사는 필경 현재의 삶에 중요한 나침반이 되는 까닭입니다.

지난 주에는 저희 사이트에서 '그림읽기'를 연재하는 조용훈 님이 '탐미의 시대'라는 책을 한권 내면서 주요 언론의 주목을 받으시더니, 이번 주에는 '고전읽기'를 연재하는 남경태 님이 '트라이앵글 세계사'(푸른숲 펴냄)를 내셨습니다. 반가운 일이 겹쳐 일어난 셈입니다.

남경태 님은 저희 사이트의 글을 통해서 이미 많은 독자들이 알고 계시듯이, 종횡무진하는 그의 백과사전적 지식에 혀를 내두를 만하지요. '군주론'에서부터 '죄와 벌'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한 그의 절대 독서량이야말로 양보할 수 없는 그의 지적 재산이라고 생각됩니다. 게다가 평범한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게 우리 현실에 맞게 옛 이야기를 새로운 감성으로 엮어나가는 글솜씨 또한 남다르지요.

'트라이앵글 세계사' 역시 그러한 그의 장기를 최대한 살린 재미있는 책입니다. 이 책에는 '서양사, 동양사, 한국사를 한눈에 보는'이라는 말머리가 붙었는데, 과연 그게 가능하기나 한 일인지 궁금한 생각부터 들겠지요.

그러나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가 역사를 보는 까닭이 현재의 우리의 참 모습을 알기 위한 것이라면, 이보다 더 좋은 방식은 없다는 생각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한국문학을 이야기할 때, 굳이 단군신화만으로는 모든 게 해결되는 게 아니잖습니까. 그리스 로마 신화라든가, 혹은 구약 성서의 신화까지도 함께 이야기할 때 균형잡힌 독서법이 된다는 이야기지요.

3백50쪽도 채 안되는 가벼운 책이 그렇게 초점을 현재의 우리에 맞춰진 것이기에 결코 허투루 읽어 치울 책이 아니라고 판단하게 됩니다.

얼마 전에 한 일본 여자가 쓴 '로마인 이야기'라는 책이 우리 독서계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었습니다. 재미없는 이야기에 적당히 당의정을 입혀 내놓은 그 책은 우리 독자들에게 서양사를 가까이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서 일견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요. 그러나 그 책의 곳곳에는 역사를 바로 보는 데에 결정적인 장애를 초래할 수 있는 허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그 책을 쓴 일본 여자는 역사적인 사실을 마치 무협지처럼 흥미로운 문장으로 풀어놓고는 말미에 역사철학, 혹은 사관에 입각한 결론 비스무리한 것들을 풀어놓습니다. 예를 들면 그 가운데, 역사 속의 우연과 필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우연과 필연의 관계는 역사 뿐 아니라 철학에서도 중요한 주제가 되어 왔지요.

그 일본 여자가 함부로 이야기할 만큼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지만, 그 여자는 마치 역사가 우연에 의해 흘러가는 것처럼 쓰고 있었어요. 어쩌면 이렇게 용감하게 단언할 수 있을 지 의심스러웠고, 그이가 아무리 아마추어 역사가라고 스스로를 이야기한다 해도 용서할 수 없는 오류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지요. 그같은 오류는 역사학 전공자가 아닌 저의 눈에도 여러 곳에서 보이더군요.

다시 남경태 님의 책으로 돌아와 보지요. 지은이는 '로마인 이야기'처럼 역사를 현재적 관점에서 매우 흥미롭게 읽도록 풀어 썼습니다. 일반 독자 대중이 흔히 고리타분하게 여기기 십상인 역사를 가까이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요.

세계 문명의 발상을 설명하면서 지은이는 게임 '스타크래프트'를 이야기합니다. "스타크래프트나 제국의 시대 같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은 어두운 상태에서 시작한다. 내 기지가 있는 곳 이외에는 전부가 암흑이다. 기지에서 유닛을 만들어 어둠 속으로 보내면 유닛이 가는 길만 밝아진다. (중략) 승패가 가려져 게임이 끝날 때 쯤이면 화면 전체에 어둠이 걷히고 밝은 상태가 된다."(이 책 34쪽에서)

흥미롭다는 점에서 이 책도 '로마인 이야기'와 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는 최소한 '로마인 이야기'처럼 주제넘은 단정이나, 최소한의 철학적 성찰조차 찾아보기 힘든 푸념 따위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되, 동양 문명권에서의 일과 서양에서의 그것을 비교하며, 흥미를 높인 점이 다른 일반 역사서와 많이 다른 점입니다.

가령 지은이는 동양 문명과 서양 문명의 중요한 차이로 동양이 통일 지향적임에 반해 서양은 분열 지향적이라고 지적합니다. 즉 서양은 각각의 단위의 자치적인 발전을 존중하면서 독립적으로 성장하는 데 반해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양에서는 자치 단위를 무시하고, 하나로 흡수 통합하는 데에 적극적이었다는 것이지요.

이어 지은이는 그같은 출발점을 바탕으로 한 양대 문화가 어떻게 변천해왔는가를 살펴봅니다. 하나의 주제를 놓고, 동양과 서양을 비교해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서술 방식은 가벼운 에세이를 제외하고는 흔히 볼 수 없는 방식입니다. 지은이는 이미 '종횡무진 서양사' '종횡무진 동양사' '종횡무진 한국사'를 서술했던 경험을 통해 쌓은 역사 지식을 바탕으로 양대 문명을 꼼꼼하고 사려깊게 비교 분석하는 것입니다.

지은이는 서양문명을 승리한 문명으로, 동양문명을 실패한 문명으로 결론지으며, 이 책은 그 성패의 뿌리를 찾고 그 과정을 비교한 것입니다. 지은이 스스로의 표현에 따르면 '잡탕'과 '융합'으로 엮어진 이 책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을 찾아내기 위해 다양한 인문학적 성찰의 기회를 던져 주고 있습니다.

고규홍 Books 편집장 (gohkh@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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