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도 수익 내라, 단 시장붕괴 막으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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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바뀌었다. 금융기관도 살아 남으려면 수익을 내라. 하지만 시장이 붕괴되지 않도록 해야 수익도 낼 수 있다. "

21일 경기도 분당 삼성생명 휴먼센터에 모인 금융기관 최고경영자(CEO) 2백여명이 찾은 공통분모다. 대조적인 개념으로 보이는 '수익성' 과 '공익성' 을 조화시키자는 것이다.

은행.증권.보험.종금.투신사 등 권역별 금융기관 CEO가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처음이다.

이근영 금감위원장은 이날 작심한 듯 수익성 위주의 경영을 강조했다. 그 전에는 성장성과 안정성이 중요했지만 이젠 '금융회사' 로 살아 남으려면 수익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李위원장은 수익을 올리라고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론 금리를 낮추라고 주문했다. 금리인하는 고수익을 노리는 자금들을 직접 금융시장으로 이동시켜 채권.주식 시장을 활성화시킬 것이며, 이는 기업의 도산 위험을 줄여 은행의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금융기관이 살려면 시장부터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李위원장은 금융권 노사의 뜨거운 감자격인 계약연봉제와 사업본부제 정착을 주장했다. 금융회사가 돈을 벌려면 성과 중심 경영이 자리잡아야 하며, 이를 위해선 성과나 수익을 낸 만큼 보수와 인사에서 대우해야 한다는 것. 그는 "계약연봉제나 독립채산적인 영업본부제가 도입된 지 여러 해가 지났으니 이제 결실을 기대할 때가 된 것 같다" 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성과위주 경영이 자리잡은 곳은 국내에선 주택은행 정도" 라고 설명했다. 李위원장은 또 제2금융권도 선진 금융권의 추세인 대형화.겸업화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이날 주제발표자로 나온 김병주 서강대 교수의 강연은 더욱 진솔했다. 金교수는 "왜 이 시점에서 이렇게 많은 CEO들을 한 곳에 모았는지 궁금하지 않느냐. 나도 헷갈린다" 며 "내 짐작으론 수익성을 원칙으로 하라. 그러면서도 공익성을 잊어버리지 말라는 얘기를 나누기 위해서인 것 같다" 고 말했다.

金교수는 "평상시 같으면 수익성만 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시장 전체가 붕괴할 조짐이 있다면 개인 플레이가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한 메시지" 라고 강조했다.

金교수는 쓴소리를 많이 했다. 그는 CEO들을 향해 "여러분이야말로 3D(더럽고, 힘들고, 위험한)직종에 일하는 분들" 이라고 말해 좌중에 웃음을 던진 뒤 "금융기관이 상업회사로 살아 남으려면 CEO가 경영철학을 세우고, 기업문화를 만들어야 하며, 그 다음엔 인사고과를 객관적으로 투명하게 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그는 "장관 중에는 윗사람을 잘 모시고 아래를 짓밟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행장들도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고 말했다.

金교수는 특히 "정부가 은행에 개입하려고 그동안 정부 지분을 팔지 않은 것 아니냐" "외환위기 이후 3년이 지났는데도 중앙은행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는 등 정부와 한국은행의 아픈 곳을 꼬집었다.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폐회사에서 보다 직설적으로 금융기관의 시장안정에 대한 협조를 당부했다. 陳부총리는 "금융중개 기능을 정상화하기 위해 금융기관들이 제대로 노력하지 않고 있다" 며 "최근 외국계 은행(시티은행)이 국내 대기업 그룹의 한 계열사(현대전자)에 대한 신디케이트론(협조융자)을 주는 등 적지 않은 노력을 하고 있는데 국내 금융기관들은 소극적" 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프라이머리CBO와 CLO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금융기관들이 노력하지 않아 지연된 감이 있다" 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재경부 관계자는 "정부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여러가지 제도적인 보완장치를 마련했는데 금융기관의 소극적 태도로 효과가 줄어든 측면이 있다" 며 "금융기관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이익창출을 위해 수익성 개선 노력을 하고 적극적인 자금공급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뜻을 전하기 위한 것" 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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