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의 시대에 아름다움 찾기

중앙일보

입력

그림을 보는 행위는 아름다움을 찾는 행위입니다. 아름다움을 찾는 행위라는 점에서는 시(詩) 또한 다르지 않지요. 보다 오래 가는 자극을 남기기 위해서 아름다움보다 추함에서 더 많은 이미지를 찾으려 하는 엽기의 시대에 그림과 시는 어쩌면 호사가들에게나 들어맞는 음풍농월일 수 있습니다.

보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에게도 굳이 보게 하고야 말겠다고 작정을 한 거리의 전광판에서 쏟아내는 숱하게 많은 광고판의 영상들은 아름다운 이미지보다 거기에서 더 멀리 떨어질수록 사람들의 마음에 오래 남는다는 생각만 깊어가는 모양입니다.

저희 Books 사이트의 '조용훈의 그림읽기'가 그 동안 독자들로부터 유난히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추함의 홍수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나고자 하는 희망의 한 표현이었다 생각합니다. 조용훈 님은 연재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그림 그 자체 뿐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모든 행위까지를 사랑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현대 시를 전공한 조용훈 님은 그가 마주한 모든 그림 속에 담긴 시적 이미지를 찾아내는 데에 혼신의 힘을 다 했습니다. 그렇게 컴퓨터 모니터 속에서 우리를 찾아왔던 글들을 책으로 담아 오랫동안 독자들의 자리에 함께 하도록 할 생각을 가진 출판사에서 그 글을 한 권의 아름다운 책으로 엮었습니다.

'열정의 화가, 매혹의 그림 읽기'라는 부제가 붙은 '탐미의 시대'(조용훈 지음, 효형출판 펴냄)이 바로 그 책입니다. 지난 주말 대부분의 종이신문에서도 이 책을 이야기했더군요. 별건 아니지만, 앞서서 읽었던 독자였다는 생각은 이 책의 출간이나, 이 책에 대한 언론의 반응이 반갑고 고맙기만 합니다.

그림과 시의 만남이라 할까요. 이런 형식의 글로 단행본을 엮어내기가 조용훈 님으로서는 이 책이 세 번째입니다. '시와 그림의 황홀경'(문학동네 펴냄)과 '그림의 숲에서 동서양을 만나다'(효형출판 펴냄)가 이 책에 앞서 낸 두 권입니다.

조용훈 님의 글이 무엇보다 좋은 것은 그림을 단순한 평론가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 아닌 까닭입니다. 그는 글을 통해 그림이 만들어지는 순간을 재현해 냅니다. 그저 그림의 아름다움을 설명하는 글이라면 굳이 우리에게 남다른 의미를 줄 리도 없겠지요. 그건 또 현대 시를 전공한 그의 몫도 아닐 겁니다.

이미 저희 사이트에 올려진 글이지만 다시 한번 인용합니다.

"화가는 그때 경북 울진의 한 산골마을을 통과하고 있었다. (중략) 화가는 순간 바람과 맞서며 다가오는 노인을 발견했다. 노인과 그는 스칠 듯 마주치며 엇갈렸다. 화가는 가던 길을 되돌려서는 노인의 앞쪽으로 내달렸다. (중략) 화가는 미친 듯이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대며 노인을 스케치했다."(이 책 77-78쪽에서)

이 스케치를 통해 화가는 "바람이 어머니를 잔인하게 내모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고단한 삶을 흐느끼듯 전하는 것이며, 어머니의 사랑을 그리움의 강물로 자신들에게 흘려 보내는 것"(이 책 81쪽에서)같은 느낌의 그림을 그려내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지요. 어머니의 본능적 사랑을 그려낸 화가 김경렬의 그림을 이야기하던 그는 이어 캐테 콜비츠의 '어머니들'이라는 그림을 떠올리며 느낌을 더 깊고 넓게 확장시켜 갑니다.

그저 그림 해설이라면 뭐 그리 대단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림 속에 담긴 화가의 느낌 속에 몰입하여, 창작의 모든 과정을 시적인 이미지로 풀어가는 글은 흔치 않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글을 한 눈으로 읽어치운 독자들이라면 감정의 과잉을 흠으로 지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예술 작품이 그러하듯, 이 정도의 감정이 쏟아지지 않고서는 어찌 창작의 아픔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조용훈 님의 글에 나타나는 감정 과잉은 오히려 미덕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늦게 피어서 빨리 지는 사과꽃의 낙화를 아쉬워 하며 숨가쁘게 한 폭의 그림(오지호의 '사과꽃')을 그려내는 화가의 마음과 그 이미지를 우리에게 전달할 수 없을 겁니다.

30년 동안 동고동락한 아내 벨라 로젠펠트의 주검 앞에서 실신했던 샤갈이 아홉달 동안이나 붓을 들지 못하고 심한 무력감에 허우적 거리던 화가 샤갈이 섬광처럼 붓을 잡아 그려낸 그림 '화촉'의 이미지를 그려내는 데에 어찌 감정을 쏟아붓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직 아름다운 이미지를 찾아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던진 화가들에게 다가가고, 그 안에 아낌 없이 자신을 내던져 건져 내는 조용훈 님의 아름다운 글들은 이 즈음 독자들에게 독특한 탐미의 체험을 남길 것입니다.

고규홍 Books 편집장 (gohkh@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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