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영희의 사소한 취향

신사의 품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2면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이럴 수가, 장동건에 대한 애정이 식고 있다. 그가 누구던가. ‘스타의 아우라’를 처음으로 가르쳐 준 연예인이었다. 10여 년 전, 장동건이 인터뷰를 하러 회사를 찾았을 때 우중충하던 사무실이 순식간에 환~해지는 기적을 경험, 그때 생각했다. “아, 기자가 되길 참 잘했구나.”

 그.런.데. SBS 주말 드라마 ‘신사의 품격(줄여서 ‘신품’)’ 속의 장동건은 영 끌리지 않는다. 연륜이 묻어나는 얼굴 때문은 아니다(라기엔 움푹한 볼이 자꾸 거슬리긴 하지만). 사십대에 접어든 고교 동창생 네 남자를 통해 ‘어른의 연애’를 보여주겠다던 이 드라마에서 도대체 어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어서다. 날로 심각해지는 경제위기와 연말 대선을 논하지 않고, 왜 여자 얘기만 하느냐고 불평하는 게 아니다. “(마흔이 불혹이라는) 공자가 틀렸다. 우린 아직, 여전히, 계속해 남자였고, 수컷이었다”는 극중 도진(장동건)의 대사는 드라마의 핵심일 게다. 나이는 들었지만 마음은 소년인 한 남자가, 진짜 사랑을 경험하며 성장해 간다는.

 하지만 드라마는 성장을 응원하고 싶은 매력적인 주인공 만들기에 실패하고 있는 듯하다. “내가 고생해 번 돈을 아내나 자식과 나눠 쓰기 싫어서” 싱글로 남아 있는 도진의 사랑 방식은 철없음을 넘어 가학적이다. 짝사랑하는 여자 이수(김하늘)에게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들키자 “짝사랑하는 남자는 다른 여자랑 자면 안 되냐?”고 화를 내는 식. 주인공이 보여주는 ‘어른’의 모습은 폼 나는 옷을 입고 비싼 차를 몰며, 100만원이 넘는 구두를 선물하는 ‘빵빵한 재력’뿐이다. ‘남자들의 섹스 앤 더 시티’를 표방했지만, 화려함만 흉내 냈을 뿐 ‘섹스 앤 더 시티’가 보여줬던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한 깊고 통렬한 성찰은 찾아보기 힘들다.

 남자들은 어떻게 볼까. ‘나름 잘나가는’ 마흔 인근의 싱글남 2명(죄송하다. 주변에 별로 없다)에게 물었다. 의외로 호의적이다. “남자들이 꿈꾸는 40대의 삶이 바로 저런 것” “나이 먹은 남자는 그에 걸맞게 성숙하리란 건 여자들의 환상일 뿐”이란다. ‘귀여운 척’ 때문에 몰입이 안 되는 여자 주인공에 대해서는? “쯧쯧, 여자들이 ‘오버’한다고 생각하는 그 지점이, 바로 남자들을 끌어당기는 포인트지.”

 그랬군요. 몰랐습니다. ‘신품’은 남자들의 판타지에 충실한 드라마였던 것? 왠지 모를 이 찝찝함은 아직도 남자의 심리를 모르는 삼십대 싱글녀의 철없는 오해 때문이었던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