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환자를 볼모로 삼아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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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대한의사협회 노환규 회장 주재로 12일 산부인과·외과개원의·이비인후과·안과 의사 회장이 모여 다음 달 1일부터 일주일간 진료를 집단 거부하기로 합의한 것은 국민을 실망시키는 일이다. 정부가 7월부터 병·의원에서 시행하는 백내장·편도·맹장·탈장·치질·제왕절개 분만·자궁수술 등 간단한 7개 수술에 적용키로 한 포괄수가제에 반대해 응급상황을 제외하고는 이들 수술을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의사가 환자를 외면하고 본분인 진료를 팽개치는 건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의사단체들의 진료 거부 결정이 자칫 우리 사회의 존경받는 전문가 집단인 의사 사회 전체의 명예 실추로 이어져선 곤란하다. 이런 가운데 대장항문·관절 등 전문병원으로 지정받은 99개 의료기관이 모인 대한전문병원협의회가 진료 거부에 동참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고무적이다. 이 단체는 어떤 상황에서도 환자를 우선해 진료를 계속해야 한다는 의사의 본분을 확인해 줬다.

 정부가 일부 의사단체의 반대에도 불필요한 검사·처치·재료비를 줄여 의료비를 절감할 수 있는 포괄수가제를 굳이 실시하려는 이유는 전 국민 건강보험제도를 지키기 위해서다. 한국은 입원일수나 1인당 보건의료비 지출 증가속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두 배나 되는 ‘의료 과소비 국가’다. OECD도 “이대로 가면 한국 의료가 지속가능하기 힘들다”며 포괄수가제 확대 시행을 권고하고 있다. 다양한 기법으로 보건의료비 지출을 적정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애써 만들어 놓은 건강보험제도의 근간이 흔들리게 된다. 그렇게 될 경우 가장 직접적인 피해는 보험료와 자기부담 의료비를 더 많이 내야 하는 국민이 보게 된다.

 결국 국민 이익을 지키고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의사단체를 끊임없이 설득하고 국민에게 사태의 본질을 적극적으로 설명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의사단체 관계자들은 그동안 의사들을 존경과 신뢰의 눈길로만 바라보던 국민의 시각이 이번 사태로 변할 수 있음을 직시하고 보다 넓은 시각으로 보건의료를 다시 바라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