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스페인 구제금융 지원, 후폭풍이 더 문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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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스페인 은행 위기가 유럽연합(EU)의 구제금융 지원으로 다소 진정된 건 그나마 다행이다. 그동안 국제금융시장이 스페인 위기 때문에 대단히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스페인만의 힘으론 은행 부도를 막아낼 수 없다는 게 국제사회의 중론이었다. 그런데도 스페인은 계속 스스로 해결하겠다고 버텨 왔다. 구제금융 지원에 수반되는 내정간섭 우려 때문이었다. 그런 고집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문제는 스페인이 유로존(유로화 사용권)의 4대 경제대국이라는 점이다. 스페인 은행이 부도날 경우 자국은 물론 유럽과 전 세계 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미칠 게 자명하다. 전 세계가 스페인의 구제금융 지원 신청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운 이유다. 이런 점에서 스페인이 엊그제 구제금융을 요청하고, EU가 수용한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최대 1000억 유로(147조원)가 지원되면 스페인은 일단 급한 불은 끌 수 있다.

 하지만 이게 오히려 세계경제에 악재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스페인 입장에서도 이는 일시적인 마취제에 불과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1000억 유로는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할 정도로 스페인의 은행 부실이 대단히 심각하다. 예컨대 끊임없이 위기설이 나도는 스페인 3대 은행의 자산규모만 따져도 지난해 말 현재 2조 유로(3000조원)가 넘는다. 스페인 국내총생산(GDP)의 거의 두 배에 이른다. 이 중 부실이 우려되는 부동산 대출액만도 1800억 유로가 넘는다. 여기에 포르투갈 등 다른 외국에 빌려준 돈의 부실 우려까지 합치면 3대 은행의 위험 노출액은 최소 400조~500조원으로 추정된다. 150조원 정도론 어림없다는 의미다.

 이것만 해도 감당키 어려운 판에 스페인 부동산 가격은 지금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 은행 부실이 계속 커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국민 4명 중 한 명이 실업이고, 청년은 두 명 중 한 명이 실직자일 정도로 경제가 급랭하고 있어 부채 상환 능력도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 일각에서 “스페인 위기는 이제 시작”이라는 진단이 나오는 건 그래서다. 당연히 ‘깨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구제금융 지원은 긴축 등 자구노력 조건이 없었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돈이 투입될 게 자명하다. 독일마저 위험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스페인 구제금융에 한숨 돌려선 안 된다. 스페인은 물론 유로존, 더 나아가 EU 전체의 위기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비상대책을 짜야 한다. 무엇보다 외환위기 등의 금융불안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또 금융위기는 곧바로 실물경제의 침체로 이어진다는 점에도 유념해야 한다. 외국과 긴밀한 공조 하에 모니터링을 철저히 함은 물론 시나리오별 위기 대책의 수립과 실행에 한 점 오차가 없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실물경제 침체에도 적극 대비해야 한다. 그야말로 비상한 각오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