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육아, 엄마 일의 반도 안하는 아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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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면

회사원 이모(37ㆍ서울 신길동)씨는 매일 아침 출근길에 4살 짜리 딸을 어린이집에 데려다 준다. 하지만 저녁엔 딸아이와 거의 놀아주지 못한다. 야근에 회식이 잦아 매일 오후 10시를 넘겨서야 귀가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맞벌이를 하는 아내와 말다툼이 잦다. 그의 아내는 “남편은 퇴근이 늦어도 괜찮고 나는 무조건 일찍 집에 와야 하는 분위기”라며 “아이가 아빠와 대화하는 시간이 적다 보니 요즘엔 아예 아빠한테 말을 잘 안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맞벌이 부부 중 남편이 자녀 양육에 쓰는 시간이 부인의 절반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무총리 산하 경제ㆍ인문사회연구회 육아정책연구소는 10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아버지의 육아참여’에 대한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조사는 2010년에 아동 1802명의 부모를 대상으로 실시됐다.

이에 따르면 만 3세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의 경우 남편이 평일에 아이를 돌보는 시간은 평균 1.3시간이었다. 반면 아내는 3.5시간을 썼다. 주말에도 남편이 자녀 양육에 쏟는 시간은 4.1시간으로 아내(7.5시간)보다 짧았다. 전업주부는 양육시간이 평일엔 6.9시간, 주말엔 7.5시간이었다.

육아정책연구소 김은설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남성들은 자녀 양육 부담을 아내와 동일하게 나눠야 한다는 의식이 부족한 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여성의 60.9%가 ‘아내가 직장에 다닐 경우 가사와 양육을 동등하게 분담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했지만 남성은 35.3%만 찬성했다.

맞벌이 여성의 남편들이 전업주부의 남편보다 자녀 양육에 상대적으로 협조적이었다. 아내들이 남편의 양육 협조 정도를 평가한 결과, 전업주부는 3.68점(5점 만점)을 줬지만 맞벌이 여성은 약간 높은 3.8점을 줬다. 또 근무시간이 짧은 남편일수록 양육참여 정도가 높았다. 하루 8시간 근무하는 아버지가 자녀와 매일 놀아주는 비율은 32.2%였다. 반면 근무시간이 13시간 이상이면 이 비율이 7.2%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아버지의 양육참여가 자녀 성장과 발달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육아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아버지와 시간을 많이 보낸 아이들은 학업성적이 높고 청소년기에도 불안이나 우울 정도가 낮다는 연구결과가 많다. 김은설 연구위원은 “아버지들이 양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시간제근무와 남성 육아휴직을 도입하는 기업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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