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안심한우’ 브랜드 독점해도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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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위문희
경제부문 기자

지금 서울 마장동 축산물시장 상인들은 천막 농성을 하고 있다. 시장 인근의 축산물 가공 업체 공장 앞에서다. 현장에는 ‘사수하자! 우리 삶의 터전을, 농협 안심한우로부터’ 등의 팻말들을 꽂아 놓았다. 상인들은 두 달 전 농성을 시작했다.

 이들의 주장은 팻말에 쓰인 대로 ‘농협이 영세 상인의 생존권을 뺏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상인들이 농협이 아니라 축산물 가공 업체 앞에서 농성을 벌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 업체가 ‘농협 안심 한우’와 거래를 하는 곳이어서다. 도축장에서 고기를 받아서는 이를 부위별로 나누고 포장해 ‘농협 안심 한우’ 전문점에 납품을 하는 게 이 회사의 일이다. 그런데 이 회사가 최근 사업을 늘리겠다며 공장을 증축하려 나섰다. 마장동 축산물시장 상인들은 이를 “농협이 안심 한우 사업을 확장하려는 신호”로 해석했다. 그렇잖아도 농협이 한우 판매점을 늘려 점점 장사가 위축되는 판에 더 이상 밀려서는 문제가 심각해지겠다고 생각해 결국 농성까지 하게 됐다. 또 다른 ‘골목 상권 침해’ 논란인 셈이다.

 물론 농협은 생각이 다르다. 대기업이 아니라 ‘농민들이 연합한 단체’가 바로 농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상인들 입장에선 대기업이나 농협이나 상대하기 벅찬 ‘거인’이기는 마찬가지다. 이명근 마장동 축산물시장상점가 진흥사업협동조합 대표는 “농협이 영세 상인들 죽이기에 앞장서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인들은 농협이 ‘안심 한우’란 브랜드를 쓰는 데 대해서도 불만이 많다. 농협은 2008년 광우병 파문 이후 ‘안심’이란 브랜드를 쓰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상인들의 항변은 이렇다. “한우가 광우병 걸렸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나. 농협이나 우리나 한우를 팔기는 마찬가진데, 왜 농협만 안심이란 브랜드를 독점하는가.”

 사실 농협은 축산물 상인뿐 아니라 일반 재래시장 상인들의 눈총도 받고 있다. 대형마트나 기업형수퍼마켓(SSM)과는 달리 영업 규제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농협 하나로마트는 농수축산물 매출의 비중이 51%를 넘는다는 이유로 월 1~2일 강제 휴무 적용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상인들의 말마따나 그들의 눈으로 볼 때 농협과 대기업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농협 스스로 영세 상인들과 상생하려 나서는 자세가 필요한 때다.

위문희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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