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생일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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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호 35면

아는 스님이 초파일날 아침상을 같이 들자고 해서 스님 도량으로 내려갔습니다.
서로 간에 마음을 내어 만나는 사이인지라 도량 가는 발걸음은 항상 가볍습니다.
도량 주인은 말과 행동이 단출해 주변 또한 항상 깔끔합니다. 초파일날도 역시 그랬습니다.
풍성한 마음을 가득 담은 소박한 부처님 생일상을 차렸습니다. 일 년에 한 번,꽃 장식에 둘러싸여 호사를 누리는 나무 부처님께서도 흐뭇한 웃음을 보내는 듯합니다.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엌살림이 빠지긴 했어도 지금 보이는 게 스님 살림살이의 거의 전부입니다.
어릴 적에 출가해 법랍은 높지만 대중과 호흡하는 선방 생활을 빼먹지 않으려는 선승입니다.
제가 아는 한 이 도량 주인은 ‘신도’보다는 ‘친구’가 많고, ‘차’를 타기보다는 ‘걷기’를 좋아하고, 그저 ‘허허’ 웃기를 좋아합니다.
요즘 서울에 있는 절집이 몹시 시끄러워 보입니다. 세상 살아가는 데 있어 어느 누구나 흠이 없을 수 없겠지만 세상 구석구석에서 ‘스스로의 맑음’을 지켜내며 불자의 길을 걷는 스님들이 있는 한 구원의 연꽃등은 꺼지지 않을 겁니다.
말라깽이 스님! 하안거 다녀와서 거문고 소리나 들려 주세요.

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이창수씨는 16년간 '샘이 깊은 물' '월간중앙' 등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2000년부터 경남 하동군 악양골에서 '중정다원'을 운영하며 녹차와 매실과 감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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