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깐한 윤 대리님, 햄버거 빵 태웠네 … 백화점 직원 - 협력사원 ‘아침밥 소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6면

현대백화점 서울 천호점의 고덕길 지원팀장(왼쪽 둘째)이 협력사원을 위한 아침상에 새싹 비빔밥을 만들어 내놓고 있다. 지난달 시작한 본사 직원과 협력사원 간 소통의 창구다. [사진 현대백화점]

현대백화점의 서울 천호점에서 아웃도어를 담당하는 윤영선(31) 대리는 지난주부터 협력사원들한테 ‘빵 대리’로 불린다. 그는 지난주 초 아침에 직원식당에서 브런치(아침 겸 점심식사) 스타일의 웰빙 햄버거를 만들어 아침상을 차렸다. 아침상에는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아웃도어 브랜드를 판매하는 협력사원 30여 명이 초대됐다. 이들은 평소 깐깐하고 완벽주의자로 소문났던 윤 대리가 내민 햄버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윤 대리가 쭈뼛거리며 내놓은 햄버거의 빵이 드문드문 까맣게 타 있었기 때문이다. 한 협력사원은 20일 “빵을 태워 어쩔 줄 몰라 하는 윤 대리를 보고 새로운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했다”며 “이후 윤 대리를 대하기가 훨씬 편해졌고 어려운 일도 자주 상의하고 있다”며 웃었다. 윤 대리는 “메뉴 선정부터 공을 들였는데 빵을 태워버려 너무 미안했다”며 “요즘엔 협력사원들이 먼저 티타임을 갖자고 제안도 하고 더 편한 사이가 됐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 천호점에서 ‘아침밥’이 백화점 직원과 협력사원 간의 벽을 허물고 있다. 백화점은 백화점 소속 직원과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브랜드에서 파견 나온 협력사원이 한 공간에서 일하는 독특한 조직이다. 그래서 백화점 소속인 30대 초반의 대리가 40~50대의 관리 대상인 협력사원을 모아 놓고 아침조회를 하거나 본사 방침을 지시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백화점 직원과 협력사원들이 서로를 불편하게 여기고 어색해 하는 이유다. 천호점의 고덕길(47) 지원팀장(부장)은 “아침밥을 같이 먹으면서 직원과 협력사원 간 소통의 벽이 뻥 뚫렸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 천호점 직원들은 기존에도 협력사원과 친밀도를 높이기 위해 티타임이나 삼겹살 회식 등을 자주 했다. 하지만 협력사원들은 회식자리도 업무의 연장선으로 보고 불편하고 어렵게 여겼다고 한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아침밥’이다. 특히 대부분이 여성인 협력사원이 아침밥을 거르고 출근한다는 데 착안했다. 아침상을 준비하는 백화점 직원들은 평소보다 두 시간 정도 일찍 출근한다. 직원식당에서 흰색 가운에 앞치마를 두르고 1일 주방장으로 변신한다. 초대한 20~30명의 협력사원을 위해 전날 저녁에 본인이 선정한 메뉴로 아침상을 차린다. 이후 아침밥을 같이 먹으며 회의도 하고 이런저런 사적인 얘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소통의 장이 된 것이다. 고 부장은 “직원들은 백반부터 닭볶음탕, 새싹 비빔밥 등으로 메뉴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