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의 성차별 문제는 닷컴이 더 악화시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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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인터넷이 생소하던 시절 사람들은 인터넷이 많은 것을 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얼굴을 맞대고 나누는 의사소통은 도태될 것이다, 발리에 살면서 일은 브뤼셀에서 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가상 사무실의 등장으로 일터의 불평등이 사라지고 성과 무관한 비즈니스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다 등등. 물론 이제 와서 보면 참으로 순진한 생각들이었다. 얼굴을 맞대는 의사소통은 그 어느 때 못지 않게 중요하다. 인터넷이 피부색이나 남녀·인종의 벽을 허물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인터넷이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직장여성의 여건을 나쁜 쪽으로 바꿔놓았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나는 얼마 전까지 유럽의 한 인터넷 창업회사에서 일했다.
처음에 그 일을 맡은 것은 새로운 비즈니스 패러다임을 창출하는 개방적이고 창의적인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는 데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사 즉시 나는 유럽 신경제의 가혹한 현실에 직면했다. 구경제 출신 인사들, 즉 투자은행가와 경영 컨설턴트 등이 득실거리는 창업회사가 많았던 것이다. 그들은 여성에게 우호적이라고 할 수 없는 문화에서 온 사람들이며 그런 문화를 함께 갖고 왔다. 경쟁이 치열하고 협동정신은 바닥이었다. 유동적 근무의 가능성은 반사적으로 얼굴 맞대는 것을 좋아하는 舊경제에 의해 날아갔다. “많은 사람이 과거의 근무관행을 새 일자리에 그대로 갖고 간다”고 직장과 생활 문제를 다루는 ‘flametree.co.uk’의 공동 창업자 제인 벅스턴은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창업회사들은 직원들이 공정하게 대우받고 있으며 능률적으로 이용되고 있는지 여부를 확실히 하기 위한 시간이나 자원이 많지 않다. 간부제도나 명확한 보고체계가 자리잡히지 않은 회사가 상당수다. 지난해 봄의 시장붕괴 전에는 창업회사의 인력관리 간부들이 미친 듯 신입사원을 찾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것이 곧 성차별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그렇게 되면 혼란과 파벌이 조장돼 사람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없게 된다. “문제는 성별 차이가 아니라 경험부족”이라고 여성들의 네트워킹 그룹 ‘개더’의 공동 창업자 커스텐 에드먼슨은 말했다.

창업회사의 혼란과는 별도로 닷컴의 많은 여성들은 여전히 ‘남성적’ 사무실 분위기와, 동료 여직원이나 역할모델의 부족 문제와 씨름한다. 흔히 여자는 어떤 팀에서 종속적인 것으로 간주되거나, 마케팅이나 인력관리 같은 ‘연한 쪽’ 일을 맡아야 한다는 고정관념들이 있다. “여자가 튀는 행동을 하면 사람들이 어떤 여자라고 결론을 내리기 때문에 그 편견을 깨려면 엄청 고생하게 된다”고 테크놀로지 분야의 여성을 지원하는 국제단체 디지털 이브의 유럽담당 이사 메이 청은 말했다.

그러나 청은 그 벽을 허물었다. 그녀는 디지털 이브에 대한 기업들의 지원을 확보했으며, 여성이 소유한 사업체들을 위한 기금 조성의 희망을 품고 있다. 인터넷은 여성이 독자적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많이 조성했다. 이제는 여성 인터넷 컨설턴트·웹디자이너·기술 서비스 제공자가 많다. 영국에 본거지를 둔 마커스 벤처 컨설팅의 창립자 루시 P. 마커스는 여성들은 돈을 벌 수 없다는 한 남성 은행가의 말에 발끈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회사인 독자적 네트워킹 그룹 ‘하이 테크 위민’을 세웠다. 그 뒤로 그 그룹을 키워 지금은 전세계에 1천 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제인 벅스턴은 지난해 봄 시장붕괴의 와중에도 ‘flametree.co.uk’를 위한 자금 조성에 성공했다. 핵심 직원들 몇몇이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회사인 데도 그런 성과를 올린 것이다. 세 자녀를 둔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성공하려면 사람들을 달달 볶아야 한다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인터넷 사업의 남성용 모델이다. 여자들의 경우 그럴 필요가 없다.”

최근의 시장붕괴 덕분에 많은 졸부들이 솎아지고 있다. 여기에서 살아남는 자는 풍상에 단련되며 더욱 현명해질 것이다. 유럽 기업들은 여성의 고용·유지·지원 등의 문제에서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현명한 기업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유능한 사람을 잘 관리하는 것이 비즈니스에 유익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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