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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되는 제주도의 몽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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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정용수
정치부문 기자

남방항로 보호를 목표로 제주도 강정마을에 건설 중인 제주해군기지 건설사업이 또다시 장애물을 만났다. 국무총리실이 주관하는 제주 해군기지(제주민군복합관광미항) 건설을 위해 16일 예정됐던 시뮬레이션 재현 작업이 제주도 측의 불참으로 무산됐다. 중앙정부의 결정으로 진행되는 국책사업이 지방정부의 공사중지 행정명령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민간단체들의 반대가 사그라지자 지방정부가 발목을 잡는 형국이다.

 제주도는 자신들이 참여하지 않은 시뮬레이션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정부가 이를 수용해 이날 대전 한국해양연구원에서 이전에 했던 시뮬레이션을 다시 실시할 예정이었다. 이미 실시했던 28가지의 시뮬레이션 중 제주도 측이 임의로 지정하는 케이스를 전문가들이 참관키로 했다. 정부와 제주도 양측의 합의대로였다. 그러나 제주도는 전날인 15일 오후 총리실에 28가지에 포함되지 않은 3가지에 대한 추가 시뮬레이션을 요구했다. 당초 합의한 ‘재현’이 아닌 ‘검증’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불참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제주도 측은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 안전이 확인되면 다른 것은 볼 것도 없다”고 주장한다(양병식 제주도청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추진단장). 일리 있는 얘기다. 안전은 무엇과도 타협할 수 없는 요소다.

 그러나 제주도의 입장엔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제주도는 항구 입구(남방파제)에 15만t짜리 유람선을 정박시킨 뒤 항구 안쪽(서방파제)에 15만t짜리 유람선을 가져가 180도 회전시켜 세우라고 주문했다. 항구의 속성상 배는 안쪽부터 정박한다. 그런데 바깥쪽부터 정박시키라는 요구다. 이는 여객터미널에 도착한 비행기 왼쪽으로 내리면 될 것을 180도 회전시켜 오른쪽 문으로 내리라는 것과 같다.

 중앙정부와의 약속을 하루 앞두고 새 조건을 제시한 것은 뭔가 다른 생각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들게 한다. 자신들이 요구해 자리를 만들고, 새로운 조건을 내세우고, 관철되지 않으면 참석하지 않는 일종의 ‘응석’처럼 보인다.

 지난해에 만났던 제주도청 관계자는 “중앙정부에서 ‘성의’를 보여줘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중앙정부의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 결국 제주도의 바람대로 정부는 제주도에 10년간 1조771억원을 지원키로 했다. 그러나 그만큼으론 성이 차지 않는다는 것일까.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심술을 부리는 성질’. ‘몽니’라는 단어의 정의다. 1조원이 넘는 지원에도 불구하고 거듭되는 제주도의 해군기지에 대한 불만스러운 대응은 ‘몽니’가 아닐까라는 우려를 감출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