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위대했던 로베르토 클레멘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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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는 그 역사의 깊이만큼이나 화려함이나 놀라움, 환희의 순간을 자아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경건스럽기까지 한 선수의 모습도 이루어 내었다.

1930년대까지만해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병에 걸려 은퇴했던 뉴욕 양키스의 스타 루 게릭, 그는 성실함뿐만 아니라 헌신적인 동료애를 발휘하며 빈곤했던 야구 선수들을 돌보았던 인간적인 선수였다.

게릭은 미국인이었지만 히스패닉인으로서 그와 같은 선수가 있었다면 그는 아마도 로베르토 클레멘테였을 것이다.

1972년 12월의 마지막 날, 니카라과의 지진 피해민들을 돕기 위해 보급품을 싣고서 비행기를 탔었던 클레멘테에게 이 비행은 자신의 마지막 비행이 되고 말았다.

1934년 8월 18일, 푸에르토리코의 카롤리나에서 출생한 클레멘테는 1952년 푸에르토리코의 윈터리그에서 야구 인생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1954년 2월 19일, 브루클린 다저스와 계약했지만, 그 해 11월 22일 보호선수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던 그를 피츠버그가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서 얻게 되었고, 클레멘테의 메이저리그 수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에겐 이 계약이 있고 난 후 얼마 뒤 불행한 일을 겪게 된다. 자신의 큰 형이었던 루이스가 12월 31일 뇌종양으로 세상을 뜨게 된 것이다. 이런 충격 때문이었는지 1955년 클레멘테의 메이저리그 성적은 그다지 신통치 못했다. 5개의 홈런과 47타점의 성적, 그리고 ,255의 타율이 그에게 주어진 첫해의 메이저리그 성적표였다.

하지만 그의 실력은 이듬해 .311의 타율을 기록하면서 발휘되기 시작하여 첫 3할을 친 1956년으로부터 4년뒤 .314를 기록하면서 8년 연속 3할의 대기록을 이어간다. 1960년에 피츠버그는 양키스와의 월드시리즈를 제패했고, 클레멘테 역시 .310를 기록하며 시리즈 우승을 한 몫 거들었다.

1961년 클레멘테는 23홈런과 100득점,201개의 안타를 기록했고, .351를 기록하며 자신의 첫번째 타격왕도 거머쥐었다.. 339를 기록한 1964년 클레멘테는 두번째 타격왕을 차지하며 자신의 진가를 또 한 번 보여 주었다.

1965년에는 자신의 세번째 타격왕을 차지하였고,이듬해에는 내셔널리그 MVP까지 수상하였다. 1967년 클레멘테는 네 번째이자 자신의 마지막 타격왕을 차지하였다.

클레멘테에 힘입은 피츠버그는 1971년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월드시리즈를 7차전 끝에 힘겹게 이기게 되었고,이 시리즈까지 14경기 월드시리즈 연속 안타를 기록한 클레멘테는 .414를 기록하며 시리즈 MVP를 수상하였다.

1972년 1월 29일, 12번째 골드 글러브를 수상한 클레멘테는 1972년 9월 30일 메츠의 존 매트랙 투수로부터 자신의 3천번째 안타를 뽑아 낸다. 이 안타는 클레멘테의 마지막 안타가 되었다.

하지만 이처럼 화려한 야구 인생을 쌓아 가던 클레멘테에게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 사건이 일어났다.

중남미의 니카라과에서 지진이 터졌고, 클레멘테는 구호임무를 띠고 니카라과로 비행 도중 푸에르토리코의 산 후안 해변에 자신이 탄 비행기가 추락하고 말았던 것이다.이 위대했던 선수는 그렇게 이 세상을 떠났고, 그 날은 자신의 큰 형이 세상을 떠났던 날로부터 정확히 18년이 지난 뒤였다.

야구 명예의 전당 선정 위원회는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 위해서는 5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규칙을 깨고서 만장일치로 클레멘테를 명예의 전당에 헌액시켰다.그리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히스패닉인으로서는 그가 처음이었다.

그의 번호 21번은 1973년 4월 6일 영구결번 처리되었고, 이 위대한 선수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73년부터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이 제정되어 그의 정신을 지금까지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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