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투자은행·펀드 춘추전국시대

중앙일보

입력

"부실채권 전문가라면 홍콩보다 서울에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
지난해 말 홍콩에서 만난 UBS 워버그 등 대형 투자은행 사람들은 부실채권(NPL)시장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이 '부실채권의 보고(寶庫)' 로 떠오르면서 세계 부실채권 시장을 주무르는 외국계 주요 투자은행과 펀드 등이 대거 몰려들고 있다.
자산관리공사나 예금보험공사.시중은행 등이 내놓은 부실채권은 대부분 이런 외국계 자본들이 거둬들였다.

투자은행으로는 골드먼삭스.모건스탠리 딘 위터.리먼 브러더스.도이체방크 등이, 펀드로는 론스타 코리아와 서버러스가 국내에서 돈벌이를 모색하고 있다.

다소 늦게 한국시장에 뛰어든 제너럴 일렉트릭의 금융 자회사인 GE캐피털과 부동산 전문 자산관리회사(AMC)인 렌드리스도 활발하게 사업을 펼치고 있다.
론스타와 렌드리스의 경우 서울사무소 인원이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많다.
한국보다 부실채권 규모가 10배 정도 많은 것으로 알려진 일본 사무소와 비슷하다.

외국계 투자기관들은 물론 수익을 올리기 위해 한국의 부실채권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외국 자금을 통해 국내 금융기관의 부실이 정리되는 효과도 상당하다.
시장이 부실을 정리해 주는 만큼 공적자금 투입을 줄일 수 있다.

렌드리스의 칩 굿 사장은 "올해부터 시장에 나오는 대규모 부실채권이 줄어들 것으로 보지 않는다" 면서 "아직까진 괜찮은 회사가 나오지 않았지만 요즘 시장에 나오는 부실채권들이 다양해지고 있다" 고 국내 시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국내 기업들은 ▶상당수가 스스로 구조조정 작업을 벌이고 있으며▶자금 여력이 없는 데다▶여윳돈이 있더라도 부실자산 인수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해 외국 회사와 합작해 부실채권을 인수한 삼성생명을 제외하고는 부실채권 시장에 참여하기 힘든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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