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MP3에 푹 빠진 10대들 거리에선 시각장애인과 마찬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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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메릴랜드대 의과대 소아과 리처드 리히텐스타인(사진)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이어폰을 끼고 사고가 난 보행자 116명에 대해 분석한 보고서를 지난해 11월 발표했다.

리히텐스타인 교수는 3일 본지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이어폰을 쓰고 걷던 10대가 열차에 치인 사건을 보고 연구를 시작했다”며 “미국에서도 이 문제가 사회적인 주목을 끌고 있다”고 말했다. 리히텐스타인 연구팀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 7년간 일어난 이어폰 보행사고 116건 가운데 15~24세 피해자가 62건으로 전 연령층 중에서 가장 많았다. 89%는 도시에서 일어났고, 55%는 보행자가 열차와 부딪히는 사고였다. 10건 중 3건(29%)은 경적소리가 울렸지만 사고가 발생했다. 리히텐스타인 교수는 “전자기기 사용에 익숙한 10대들은 주위 소리와 차단된 ‘주의력 없는 시각장애인(inattentional blindness)’으로 교통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고 말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에 따르면 12~17세의 74%가 MP3 플레이어를 가지고 있고(2008년 기준) 휴대전화 사용자는 2004년 45%에서 2008년 71%로 급증한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팀은 보고서에서 “운전 중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것이 사고 발생률을 높인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어폰을 사용하는 보행자의 위험성은 파악되지 않았다”며 “전자기기 사용이 많아지면서 보행자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어 이를 막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리히텐스타인 교수는 “보행자의 이어폰 사용은 너무 흔해 일상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규제를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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