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시각의 음반 평론지 '악' 2호 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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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녀린 선율의 음악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 2악장이 생각나는 계절입니다. 슬금슬금 다가오는 겨울 발자국 소리를 뒤로 하고 싶을 때에는 옛날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의 기타 애들립도 다시 들어보고 싶어집니다. 그러다가 다시 따뜻한 영화 '굿윌 헌팅'에 삽입됐던 어쿠스틱 기타에 실린 엘리엇 스미스의 노래가 생각나는, 그런 시절이지요.

막상 음악을 듣고는 싶으나 음반을 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지금 듣고 싶은 음악이 어떤 음반에 실려 있는지, 또 그 음반의 상태가 어떤 지를 일일이 알 수 없는 까닭에서입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음반사에서 무가지로 내는 음반평론지를 구해 보곤 했었습니다. 그러나 음반사에서 내는 무가지에는 자기 회사에서 내는 음반 위주의 평이 실리기 때문에 음반 선택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었어요.

지난 9월, 첫째 권을 내고 최근 두 번째 책이 나온 격월간 '악(樂)'을 만나는 일은 그런 뜻에서 매우 반가운 일입니다. 음악 전문회사 아이엠스테이션(www.imstation.com)이 내고 있는 이 격월간 음악 전문지는 음악 애호가들에게 음반을 소개해 주는 잡지입니다. 지금은 그 찾기 어렵지만, 음반을 소개하는 잡지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음악 관련 뉴스와 정보를 담는 사이사이에 음반을 소개하는 형식이었지만, '악'은 거꾸로 음반을 소개하는 가운데, 음악 애호가들이 궁금해 할 만한 음악 뉴스와 화제의 인물을 소개하는 형식입니다.

이 잡지의 음반 소개 역시 새로운 형식이어서, 독자들에게는 새롭게 다가갈 것입니다. 이를테면, H.O.T의 음반 '아웃사이드 캐슬'을 '조경서의 20자 평'이라는 코너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그럴듯한 시나리오임에도 불구하고...... 달라진 것 하나! 레코드점에서 안 샀다. 인터넷에서 샀다"(이 잡지 두 번째 권 25쪽에서)고 합니다.

3년만에 이상은이 내놓은 새 음반 'She wanted'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이상은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그녀 스스로 오리엔탈리즘 어쩌구 할 땐 무지 역겹다"(같은 쪽에서)고 내뱉어버리지요. 웹사이트의 자유방임을 보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인터뷰 역시 그처럼 자유로운 방식으로 진행하는군요. 피아니스트 케빈 컨과는 이메일을 통해 자유롭게 인터뷰를 진행하고, 케빈 컨의 답변을 한글과 함께 원문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지요. 중간 중간 튀어나오는 오자와 탈자가 도리어 앙증스럽게 비치는 것도, 웹사이트에서 든 버릇을 반영하게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2호에서는 케빈 컨 외에 국내의 펑키 재즈 피아니스트 한충완과 정원영의 인터뷰 기사도 볼 거리입니다. 남다른 피아노의 세계를 갖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직접 들어보는 음악과 삶의 이야기들은 흥미롭지요. 또 이미 국내에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일본 음악의 현주소를 점검한 특집 기사도 놓치기 아까운 겁니다. 소방차, 박남정, 김완선에서부터 엄정화, 룰라에 이르기까지 국내의 댄스 음악의 계보와 흐름을 살펴본 기사도 재미있습니다.

이 책의 또 하나의 미덕은 웹사이트에서 보았던 이미지의 화려함이 그대로 옮겨졌다는 것이지요. 음반 자켓 이미지는 기본이고, 음악인들의 인터뷰 사진 역시 다른 잡지에서 보는 것처럼 평범하지 않군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다양한 음반 소개 기사를 담고 있는 '악'은 음반을 구해 음악을 듣는 애호가들에게 유용한 잡지가 될 것입니다.

고규홍 Books 편집장 (gohkh@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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