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아이티서 구호활동 … 나는 ‘아이티 엄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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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삼숙(69·여·사진) 목사는 스스로 ‘아이티 엄마’라고 부른다. 중남미 저개발 국가인 아이티에서 그를 한국말로 ‘엄마’라고 부르며 따르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10년간 아이티에서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다. 1년에 한 번 모금을 하기위해 한국에 귀국해 한 달가량 머문다.

 백 목사와 아이티와의 인연은 2002년 7월 선교를 하러 아이티의 수도 포르트프랭스를 찾으면서 맺어졌다. 그가 본 아이티의 첫 모습은 ‘무기력’이었다고 한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허기져 길가에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고 기억했다. 버려진 아이들도 많았다. 고민 끝에 아이티에 남기로 결심했다.

 백 목사는 그후 아이티에서 구호활동 센터인 ‘사랑의 집’을 운영해왔다. 그는 이곳에서 아이티 사람들의 간단한 상처를 치료하고, ‘한글학교’에서 한글도 가르친다. 10명의 고아들도 돌본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잠시도 쉴 틈이 없다”고 했다. 그는 “지금 할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평범한 할머니로 지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10년간의 구호활동에 그의 건강은 많이 상했다. 지난해 4월 한국 방문 때는 백내장 진단을 받았다. 아이티의 강한 자외선 탓이었다. 그러나 그는 수술을 받지 않았다. 백 목사는 “의사가 ‘수술하지 않으면 실명할 수 있다’고 했지만 모금 일정 때문에 병원에 갈 시간이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4일 백 목사는 아이티 ‘아들·딸’ 10명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 “엄마 나라에 가보고 싶다”고 조르던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다. 백 목사는 3년 전부터 이번 여행을 준비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출생신고가 제대로 안 돼 있었기 때문에 비자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아이 가족들을 찾아서 출생신고를 하는 것에서부터 여권·비자를 발급하는 데 꼬박 3년이 걸렸다”며 “그래도 아이들이 돌아가기 싫다고 할 정도로 기뻐하니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한국에서 청계천·남산·코엑스·롯데월드 등을 둘러봤다. 이들은 다음 달 22일 출국할 예정이다.

 그는 한평생 목회자로 살아왔다. 한국에는 두 딸이 있다. 백 목사가 처음 아이티에서 살겠다고 하자 딸들은 심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백 목사는 “사람들이 나를 ‘아이티 엄마’로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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