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월드] 이유있는 자료실 폐쇄

중앙일보

입력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브리티시텔레콤은 10여년 전 자료실을 폐쇄했다.

이 자료실은 영국에서 기술관련 논문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곳이었다. 보관하고 있는 장서의 가치 또한 1백만달러(약 11억원)를 족히 넘었다. 그런데 BT는 이 장서를 선착순으로 팔아버렸다.

장서를 획득한 대학·기업·개인들은 우리 회사의 비즈니스 개혁 때문에 뜻하지 않게 횡재를 한 셈이다. BT는 왜 자료실을 폐쇄했을까-.

솔직히 말해 그 장서의 95%는 5년동안 단 한번도 이용하지 않은 것들이었다.게다가 장서를 관리할 사람이나 비용을 배정할 ''여유''(더 엄밀히 말하면 ''의미'')가 없었다. 우리같은 연구원들은 여러 과학기관이 발행하는 정기 간행물 등을 통해 자신의 연구 업적을 발표하고 싶어한다. 우리 연구소도 자체적으로도 정기 간행물을 제작, 동료·고객 등에게 업적이나 성과를 알리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간행물 형태로 다른 사람의 눈과 머리 속에 정보를 입력한다는 것 자체가 별 의미가 없어진 듯 하다. 나도 몇몇 간행물을 뒤적거리기는 하지만 5분도 안돼 쓰레기통에 버리는 수가 많다.

어떤 사람들은 나의 이같은 행동을 터무니없는 짓으로 생각할 지 모른다. 그러나 나보다 더 젊은 연구원들은 아예 뒤적거리지도 않고 바로 쓰레기통으로 던지기도 한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온라인이 아닌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도 종이로 된 간행물은 낭비라고 생각한다. 온라인에 비해 비교가 안될 정도로 속도가 느린데다 현대의 복잡미묘한 과학·공학을 설명하는 미디어로는 걸맞지도 않은 것이다.

때문에 우리 팀은 대담하게 결심했다. BT연구소의 정기간행물인 ''브리티시 텔레콤 테크놀로지 저널''의 발행을 중단하고 인터넷으로만 내용을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인터넷 사이트는 우리의 연구 내용을 신속하게 보고하는 장소인 동시에 그 내용에 관심이 있는 전문가들로부터 폭넓은 피드백을 얻을 수 있는 포털(창구)의 역할도 한다.

물론 리스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발행하는 간행물을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전문가들은 3천명이 넘는다. 과연 그들이 이같은 온라인 형식을 마음에 들어할까 하는 걱정과 두려움이 있었다.그러나 우리는 시대의 흐름을 선도한다는 확신 하에 세계 최초로 온라인 공학전문지를 만들어봤다.

결과는 어땠을까-. 최초 1주일간 우리 웹사이트의 히트 수는 4만2천건을 넘었고, 수 기가바이트 분량의 데이터가 다운로드됐다. 멋진 성공이었던 것이다.

피터 코크란 브리티시텔레콤(BT)수석 테크놀로지스트
일 주간다이아몬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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