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패트롤] '한국 복제판' 대만 어디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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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다. 2000년의 마지막 달이다. 기념할 꺼리를 찾자면 매일 밤을 샐만도 한 달이다. 그러나 세밑의 거리에서 흥청거림을 느끼기 어렵다.

지난해 뉴밀레니엄 축제를 앞당겨 치른 때문일까. 그보다는 나라 안팎에 잔뜩 드리운 먹구름 때문일 것이다.

지난 주말을 전후해서 외신은 일제히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의 경기침체 조짐을 타전하고 있다.

특히 90년대이후 세계경제를 이끌어온 미국 경제의 급강하 조짐이 심상치 않다.

미국의 3분기 경제성장률(2.4%, 전망치)은 2분기의 절반 이하로 떨어지면서 4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제조업 구매지수나 월별 소득추이 등 향후 경기를 예측할 수 있는 지표들도 온통 빨간불 일색이다.

'신경제' 를 상징해온 나스닥시장이 11월중에 23%나 폭락하면서 미국 경제가 안정성장으로 연착륙하리라는 예상은 갈수록 힘을 잃고 있다.

경쟁국들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반도체.전자제품 등 주력 품목에서 최대 경쟁국인 대만의 혼란이 주목의 대상이다.

대만은 건국이후 처음으로 올해 정권교체가 됐다거나 여소야대(여소야대)의 정치구도, 방대한 금융부실, 관치금융 등 여러모로 한국을 복제해놓은 것 같은 상황이다.

지난주말 대만정부가 중앙은행과 특별조사팀을 구성, 은행들을 대상으로 기업 대출을 줄이지 못하도록 단속에 나선 것조차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이다.

이런 혼란을 반영, 대만의 통화가치는 달러당 33대만달러선이 무너지며 20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외환위기의 탈출구로 세계화, 개방화를 택한 한국이 나라밖의 이같은 흐름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해외요인만도 감당이 벅찬 터에 국내의 정치.사회적 혼란까지 가세하면서 위기의식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주 연중 최저치를 여러차례 경신한 주가나 원화가치에는 이같은 위기의식이 담겨 있다.

연말 시한에 쫓기고 있는 정부의 구조조정 작업은 지난주말 중요한 전기를 잡았다.

공적자금 추가조성과 한전 민영화 관련법 등 핵심안건이 진통 끝에 국회에서 여야합의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고비는 많다. 특히 주초에 예정된 한국전력 노조의 파업이나 금융노조의 저항, 정부의 수습 능력 등을 면밀히 주시해야할 것이다. 구조조정작업 자체는 물론 한국의 대외신인도에도 큰 영향을 미칠 요인들이기 때문이다.

이번주부터 조업이 재개되는 대우자동차의 향방과 현대의 자구노력 이행도 주목의 대상이다.

현대건설의 경우 정몽헌회장의 경영복귀나 경영진 교체여부도 이번주중에 가닥이 잡힐 전망이다.

지난 1일 김대중 대통령은 "경제가 어렵다" 면서 "송구스럽다" 고 말했다.

3일은 3년전 우리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과 구제금융 계약을 맺고 우리 역사에 이른바 'IMF체제'를 기록한 날이다. 대통령의 발언이 새출발의 다짐이길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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