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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집권하면 살인이 증가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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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천인성
사회부문 기자

‘투표란 게 많은 시민의 삶과 죽음까지 가른다.’ 19대 총선 투표가 한창이던 11일 오후 3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트위터에 올린 글의 첫 문장이다. 그는 ‘미국에선 보수가 집권하면 살인과 자살이 함께 증가한다. 민주당이 집권하면 죽지 않을 사람들이 공화당 집권기에 살인이나 자살로 죽는다’고 적었다.

 곽 교육감은 이 같은 내용을 어느 의대 교수의 기고문에서 읽었다고 밝혔다. 글 말미엔 ‘정신 번쩍!’이라는 소감도 붙였다. 기고문을 찾아보니 미국의 정치 상황과 자살률의 관계를 분석한 미국 정신의학자의 책을 상당 부분 인용했다.

글은 곽 교육감의 팔로어 14만 명에게 퍼졌다. 그러자 “교육자가 ‘보수는 악이고 진보는 선’이라는 이분법적인 교육을 하려는 거냐”는 항의와 “(비판) 댓글 신경 쓰지 마라. 응원한다”는 지지가 동시에 나왔다. 곽 교육감이 미국의 보수와 진보를 말했지만 ‘무슨 메시지를 보내려는지 충분히 알겠다’는 반응이었다. 그가 최근 트위터에 투표 참여 독려 글을 싣고, 투표 당일엔 ‘인증샷’도 올렸기 때문이다.

 12일 곽 교육감에게 ‘선거 당일 올린 글로는 부적절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내가 보라고 해서 우연히 보고 올린 글이다. 그게 왜 오해를 빚고 논란이 되느냐”고 되물었다. 이어 “나도 공감한다. 보수가 집권하면 그렇게 되는 게 세상의 이치”라고 강조했다. 그의 주장은 법학 교수 출신이자 서울의 교육감이란 신분에 비춰봐 경솔했다. 더욱이 그는 공무원이다. 공무원은 공직선거법상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

 곽 교육감은 “(인용 글은) 익히 알려져 있는 내용”이라고 했다. ‘학자에겐 알려져 있고, 연구를 인용한 것이라 문제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렇다고 비판을 면하기는 어렵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공무원은 선거 기간 특정 정당의 업적이 사실이라도 홍보할 수 없다. 비방 역시 금지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교사들과 학부모들은 우려했다. 살인·자살 같은 섬뜩한 용어를 빌려 정치 이념이 다른 세력을 몰아붙이는 것은 이성을 잃은 괴행으로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그는 요즘 학교를 자주 찾는다. 학생과 교사에게 ‘다름과 차이를 존중하는’ 평화로운 교실 만들기를 당부한다. 하지만 이번 행동으로 그는 ‘차이의 존중’이 아니라 ‘적대와 증오’를 가슴에 담고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모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