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식의 터치 다운] 20세기 마지막 라이벌전

중앙일보

입력

엎친데 덮친격(from bad to worst).’
지난 토요일 LA고향팀 남가주대(USC)와 UCLA가 약속이나 한듯 나란히 워싱턴주의 학교에 덜미를 잡히며 캘리포니아 풋볼팬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USC 트로잔스는 역대 최고의 승률을 기록한 ‘동네북’ 워싱턴 스테이트에 27-33으로 앞마당에서 참패, 서부지구 퍼시픽-10(팩텐) 컨퍼런스 최하위로 확정됐다.

올림픽을 두번씩 치른 유서깊은 LA메모리얼 콜로세움에는 11일 4만명의 ‘초라한’ 관중만이 입장, 홈팀이 몰락한 현장의 증인노릇을 했다. 60∼70대의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할머니 동문팬들은 “내 평생 상상도 하지 못했던 꼴찌시즌이 올줄 정말 몰랐다”며 저마다 입에 거품을 물었다.

개교이래 120년동안 팩텐 챔피언으로 최고전통의 로즈보울에 28차례나 진출해 20번 우승한 ‘트로이 군단’ USC는 폴 해킷 헤드코치의 해임방침을 확정한 상태. 그가 올시즌을 끝으로 물러나면 40년만의 최단명(3년) 해고에 USC 역사상 유일하게 보울 승리가 없는 지도자로 쫓겨나는 창피한 기록을 세우게 된다.

해킷은 이번주 팍스TV와의 회견에서 “USC감독이란 항상 이기지 않으면 안되는 뜨거운 자리”라며 최후통첩을 각오(?)한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렇지만 시즌 최대 라이벌전인 UCLA와 노터데임을 모두 눌러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고 강조, 눈길을 끌었다.

UCLA 브루인스의 입장도 USC와 비슷하다. 비록 6승4패의 조금 나은 성적이지만 로즈보울에 나가지 못하게 된데다 LA의 챔피언을 가리며 ‘로스앤젤레스 보울’로 불리는 USC와의 마지막 홈경기에서 무너지면 한해 농사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채 끝나게 되는 것.

LA학교는 전통적으로 후반에 많은 역전승을 거두는 뒷심을 과시, ‘4쿼터팀’이란 별명으로 통했다. 그러나 이제는 거꾸로 ‘역전패의 명수’란 비아냥을 들으며 상대팀의 승수쌓기를 위한 ‘제물’로 전락했다.

만년 하위팀이던 플로리다 스테이트(FSU) 세미놀스가 80년대 꾸준한 투자로 ‘90년대의 팀’으로 도약한 것은 장기육성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70세가 넘은 바비 바우든이 지휘하는 세미놀스는 올해까지 ‘14년 연속 10승 이상 달성’이란 놀라운 대학풋볼(NCAA)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일(토) 12시30분 ‘LA 챔피언십’을 가리는 USC-UCLA의 라이벌전은 벌써부터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있다. ‘20세기의 마지막 라이벌 대결’이란 의미 때문에 최소 50달러가 넘는 10만석의 입장권이 벌써 매진됐으며 ABC-TV는 “광고비로 한몫 잡겠다”며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큰 경기장의 하나인 패사디나 로즈보울 경기장 주변과 LA다운타운은 이날 누가 이기던 한바탕 난리가 날 것이다. LA풋볼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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