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피치] 요미우리 삼총사의 가시 밭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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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람들이 이름이 비슷하다며 형제 아니냐고 묻더라고요. "

정민철(28)은 지난 11일 서울시내 한 결혼식장에서 정민태(30)를 만나 친근감을 표시했다. 정민철은 물론 1996년 조성민의 요미우리 자이언츠 입단을 도왔던 손덕기(38)씨의 결혼식장이었다.

식장에는 조성민(27)과 최진실(32) 예비 커플도 모습을 나타냈다. 내년 요미우리에서 뛸 한국인 투수 3인방이 처음으로 함께 모인 자리였다.

지난 9일 요미우리와 입단 계약을 한 정민태는 정민철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

국내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불렸던 정민철이 일본 적응에 실패한 이유와 1년 동안 겪었던 경험, 요미우리 구단 분위기 등을 직접 전해들을 기회였다.

정민태는 "최고라는 스타의식을 버리지 않고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는 정민철의 말에 "고생할 각오가 돼 있다.

나를 내세우지 않고 구단에서 시키는 대로 하겠다" 고 자세를 낮췄다. 정민철은 1년 늦게 일본에 진출하는 선배 정민태에게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조성민은 환한 얼굴이 아니었다. 선배에 대한 예의상 직선적인 표현은 삼갔지만 "왜 하필이면 같은 팀이냐" 는 반응이었다.

일본 프로야구의 외국인 투수 엔트리가 2명이고, 미국인 투수 대릴 메이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판에 평소에 존경했던 선배 정민태마저 경쟁에 뛰어들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98년부터 2년간 주니치 드래건스에는 선동열.이상훈.이종범 등 한국 출신 3인방이 함께 뛴 적이 있다.

99년 주니치가 센트럴리그 우승을 차지하자 국내파들의 활약이 크게 보도됐다.

그러나 당시 이상훈은 "국내 선수들끼리 같은 팀에서 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 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이상훈은 "일본에서 한국 선수들은 모두가 용병이다. 살아남으려면 남보다 잘 해야 한다.'국내파' 를 들먹일 여유가 없다" 고 지적했다.

팀 동료지만 서로 이겨야 살아남는 미묘한 관계가 돼 버린 국내 선수들의 입장을 솔직하게 표현한 것이다.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고 따뜻한 충고를 건넨 정민철이나 솔직하게 경쟁의식에서 오는 불편함을 드러낸 조성민, 명예를 지키기 위해 후배 정민철의 충고도 고맙게 들었던 정민태에게 내년 시즌은 자신의 야구 인생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내년에 웃을 사람은 많아야 1명뿐이다. 엄청난 연봉과 함께 화려한 요미우리 유니폼을 입었지만 모두가 낙오자가 될 수도 있다.

이게 '정글' 로 비유되는 프로의 세계며, 국내 최고의 스타였던 이들이 선택한 운명의 가시밭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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