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책임 회피하는 이정희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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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여론조사 조작 사건에 임하는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의 처신은 그동안 자신과 당이 표방해왔던 공정선거와 책임정치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 사건은 서울 관악을 후보단일화 여론조사에서 이 대표의 실무진 2명이 당원들에게 나이를 속여 응답하라고 유도한 내용이다. 이 대표는 근소한 차이로 민주통합당 후보에게 승리했다.

 그는 우선 실무진이 보낸 문자메시지가 200건 정도로 ‘작은 것’이라는 취지로 얘기하고 있다. 이는 문제의 심각성을 간과한 것이다. 수십이든 아니면 수천이든 숫자에 앞서 공당(公黨) 지도자의 보좌진이 유권자에게 거짓말을 종용했다는 비(非)도덕이 문제다. 그동안 모바일 경선이나 국민참여 경선에서 금품 등을 제공하고 동원한 사례는 많았어도 ‘거짓말 독려’는 없었다. 흔히 진보의 생명은 도덕성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유권자에게 조작을 유도하고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 게 경미하다는 건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그런 불법이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면 당연히 당선무효가 된다.

 이 대표는 “대표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개입한 게 아니라 두 사람의 과욕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했다. 선거법에서는 배우자나 회계책임자가 선거법 위반으로 일정한 형을 받으면 후보의 당선이 취소된다. 공동책임을 묻는 것이다. 경선에서 보좌관과 실무 국장이라면 총선에서 회계책임자 정도에 해당되는 핵심 보좌진이다.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 때 통합진보당은 9급 비서가 아니라 몸통은 따로 있을 것이라며 최구식 의원이 책임지라고 맹공했다. 검찰 수사 결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는데도 최 의원은 책임을 졌고 탈당했으며 결국 공천을 받지 못했다.

 민주당의 박영선 의원은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서 이정희 대표의 후보 사퇴를 요구했다. 이처럼 야당진영 내에서조차 이 대표의 무책임 처신을 비판하는 분위기가 적잖다. 통합진보당, 그리고 나아가 진보·좌파 진영의 도덕성을 구하려면 이 대표는 보다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는 재경선을 주장하지만 물의를 일으킨 후보가 다시 나가는 재경선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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