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짜증' 인구 센서스…민원 속출

중앙일보

입력

5년 만에 실시되고 있는 인구주택 총조사(센서스) 과정에서 조사원들이 무리하게 조사를 진행시켜 민원이 속출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많은 조사항목을 충분한 인력이나 조사 기간을 준비하지 않은 채 밀어붙인 때문이다. 늘어난 맞벌이 부부 등으로 낮 시간에 빈 집이 늘어나는 등 세태 변화에도 대비가 소홀했다. 또 국민의 협조를 높일 수 있는 당국의 사전 홍보 부족 등도 부실 조사의 이유로 지적됐다.

지난 1일부터 10일까지 전국 1천5백여만가구를 대상으로 실시되는 이번 조사에는 14만5천여명의 조사원이 투입됐다.

◇ 대리 조사=李모(43.주부.대전시 유성구 도룡동 대덕연구단지 W아파트)씨는 지난 2일 황당한 경험을 했다.

아파트 경비원이 조사표를 나눠주며 "빈칸을 기입한 뒤 관리사무소로 가져오라" 고 당부하는 것이었다. 조사표에는 최종학력.가구주 수입.혼인상태 등 사생활 관련 사항 등을 직접 기입토록 돼있었다.

李씨는 즉각 해당 구청에 항의전화를 했다. 얼마 후 담당 조사원은 전화를 걸어와 "원래 직접 가정을 방문한 가운데 조사표를 작성토록 돼있으나 연구단지 내 주민 대부분이 고학력자들이어서 굳이 설명을 안해도 될 줄 알고 경비원에게 맡겼다" 는 어이없는 해명을 했다.

◇ 새벽 방문=金모(서울 관악구 신림2동)씨는 최근 통계청 홈페이지(http://www.nso.go.kr)에 항의문을 올리고 "오전 2시에 조사원이 30여개의 방을 둔 원룸주택에 예고도 없이 방문해 대소동이 벌어졌으며 결국 주민 신고로 경찰이 출동한 끝에 잠잠해졌다" 고 불평했다.

이에 대해 조사 관계자는 "낮에 방문했으나 사람들이 없어 밤시간에 찾아간 것" 이라며 "방문 예고를 하지 않은 것은 문제지만 여러 집을 찾다 보니 늦은 밤에 찾게 됐을 뿐" 이라고 말했다.

◇ 불친절=같은 홈페이지에서 李모(여.대구시 수성구 신매동)씨는 "오후 10시쯤 여성 조사원이 명찰이나 배지도 안단 채 찾아와 남편에게 이름.나이 등을 묻곤 내용을 직접 작성하기에 '응답자가 직접 작성하는 게 아니냐' 고 항의했더니 '젊은 게 왜 그러느냐' 며 반말에다 삿대질까지 했다" 고 적었다.

朴모(여.서울 강남구 도곡동)씨는 "지난 3일 휴무여서 집안 화장실에 앉아 있던 중 초인종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이미 조사원이 집안에 들어와 있어 '다음에 방문하라' 고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고 말했다.

◇ 항의 속출=통계청 무료 상담전화(080-527-2000)에는 지난 1일 이후 전국에서 하루 평균 7천여통의 민원 전화가 걸려와 64명의 안내요원이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설명과 해명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

전화 내용은 ▶조사원들이 조사 방법을 잘 몰라 문의하는 것과▶민원인들의 '항의성' 전화가 각각 40% 정도고 나머지는 시.군.구 통계담당 직원들의 문의전화다.

◇ 문제점.대책=통계청은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대비한다는 이유로 조사항목을 1995년 28가지에서 이번에는 50가지로 늘렸다.

그러나 조사기간은 종전과 마찬가지인 10일이다. 전문가들은 조사기간 만이라도 15일 정도로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업무 난이도에 비해 조사원 일당(2만8천2백70원)이 공공근로사업 일당(2만2천~3만2천원)보다 높지 않아 우수한 조사원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크다는 지적도 많다.

충남도의 한 관계자는 "조사원 한 사람이 10일간 1백20(단독주택)~1백80가구(아파트)를 직접 방문 조사해야 할 정도여서 충실한 조사는 처음부터 무리" 라고 실토했다.

정부 관계자들은 자신들의 준비 부족 못지 않게 국민들의 협조 정신도 아쉽다고 입을 모은다. 통계청의 한 관계자는 "특히 대도시에선 당장 이득이 없다고 해서 조사에 불응하는 가구가 적지 않다" 며 "국민들의 조사 협조가 절실하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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