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FTA 전산망 너무 부실" 한국 업체들 '분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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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에 통관하려고 기다렸던 컨테이너가 20개인데, 관세 혜택을 못 보는 건가요.”

 미국 LA에 있는 한인수입업체 자연나라의 김익태 부장은 난감해했다. 한국에서 수입해온 김치와 김이 15일(현지시간)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관세 혜택을 받지 못하게 돼서다. 미국 관세청의 전산시스템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그는 “FTA 관세 혜택이 3만~4만 달러에 달한다”며 “하지만 부두 보관비용이 만만찮고 고객과 약속도 있어서 일단 통관시키는 것밖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한·미 FTA가 15일 발효됐지만 미국에선 관세 혜택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15일(현지시간) 미 관세청은 홈페이지(cbp.gov)를 통해 “한국과 FTA로 인한 관세율 변경 적용은 21일부터 될 예정”이라고 공지했다. 또 “그 전에는 통관시스템이 특혜관세 적용 요청을 거부할 것”이라고도 안내했다. 21일 전까지는 특혜관세로 통관 신청을 하면 시스템 오류가 생기기 때문에 기존 세율로 입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미 FTA 발효와 동시에 관세 혜택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 미국 내 한인수입업체들은 난감해했다. 한 수입업자는 “한·미 양국이 협상을 시작한 지 6년이나 걸려 발효된 약속치고는 준비가 너무 부실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미국 내 관세사들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한인 관세사는 “관세 혜택 때문에 통관을 미뤄달라고 한 수입업체가 20곳이 넘는데, 모두 아우성”이라고 말했다. 미국 관세청이 시스템 미비 사실을 FTA 발효 시점이 지난 15일(현지시간) 오후 12시30분쯤에야 공지한 것에 대해서도 분통을 터뜨렸다.

 당연히 특혜관세가 적용되는 줄 알고 있던 국내 수출기업도 당황했다. 국내 한 자동차부품 업체는 16일 ‘FTA에 따른 0% 세율이 적용되지 않았다’는 미국 내 관세사의 통지를 받았다. 이 업체는 “15일부터 FTA로 관세가 사라진다고 알고 있는데 아니었느냐”며 무역협회 FTA무역종합지원센터에 문의해왔다.

 하지만 정작 한국 정부는 이런 내용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16일 통상교섭본부와 관세청에 문의하자 모두 “처음 듣는 얘기다. 미 관세청으로부터 어떤 통지도 받지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는 “FTA 이행협의에서 미국 정부에 ‘15일부터 모든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답을 들었는데, 그게 아니라니 확인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관세청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15일부터 24시간 통관시스템까지 운영 중인데 미국은 전산시스템 준비조차 되지 않았다니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21일 전 통관했다고 해서 FTA 혜택을 아예 못 보는 건 아니다. 전산시스템 문제로 FTA 발효 이전의 관세를 낸 경우, 추후에 이를 돌려받을 수 있다는 게 통상교섭본부와 무역협회 쪽 설명이다.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는 “과거 미국이 다른 FTA를 발효했을 때도 같은 이유로 시스템 작동이 늦어져 나중에 관세를 환급해줬다”며 “업체에 실질적인 피해가 돌아가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LA중앙일보=김문호·이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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